황야의 이리 을유세계문학전집 104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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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의 중요한 키워드는 두 가지로, 이중성과 환상이다. 주인공 하리 할러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중성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인데 환상을 경험한 뒤 괴로움과 화해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지식인이 있다. 라고 할 때 이걸 예민한 한 개인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문제는 시대의 문제라는 걸 생각한다면 당대 시대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이념의 충돌인 전쟁, 빠르게 변하는 시대와 변화에 저항하는 시대의 충돌, 혼란 같은 것이다. 하리 할러는 그 충돌에서 고립되어 있다가 자살을 결심한다. 이때 등장하는 게 환상인데 환상은 그가 느낄 수 없었던 사건을 경험하게 해주었고, 그가 억누르고 있던 분열된 자아들의 기쁨을 알게 해주었고, 두 세계의 충돌이 반드시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황야의 이리>를 읽고 윌리엄 S. 버로우즈의 <네이키드 런치>가 떠올랐다. <네이키드 런치>는 마약의 환각 상태가 내면의 노래를 듣게 해준다고 했고 <황야의 이리>도 하리 할러가 내면의 여러 자아를 만나고 깨달음을 얻은 건 코카인 때문이었다. <황야의 이리>가 나왔을 당시 반시민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네이키드 런치>도 당대에 문학이냐 아니냐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네이키드 런치>는 마약중독자의 경험담일 뿐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황야의 이리>에도 같은 말을 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황야의 이리>는 <네이키드 런치>보다는 덜 노골적이다.


어찌되었든 <황야의 이리>에 들어 있는, 괴로움과 소망, 이중성과 환상은 개인과 시대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개인과 시대의 정신상태-충돌과 소외가 당대만 그랬을까 질문하면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황야의 이리> 마지막에서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은 이렇게 고백을 한다. “아,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다..(중략)...다시 한 번 게임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고통을 다시 한번 맛보고, 그 무의미함에 다시 한번 전율하며, 내면의 지옥을 한 번 더, 아니 몇 번이고 자주 통과하는 여행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언젠가 나는 체스 게임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p324 여기서 체스판이 의미심장하다. 나는 ‘나’의 형상을 한 무수한 체스말을 가지고 나의 인생이라는 체스판을 둔다. ‘나’라는 체스말은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지만 어느 하나 하찮지 않고 모두 소중하다. 나아가 체스판이 이 시대라고 하면 체스말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은 모두 의미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다중 속에서 개성이 함몰된다고 여겨 괴로워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환상을 통해 깨달았다. 결국 <황야의 이리>는 이렇게 묻는다. 다중 속에서 개성이 함몰되는 게 아니라 개성은 다중이 있어야 존재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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