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들 을유세계문학전집 101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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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크라흐트 <망자들>의 구성이 흥미롭다. 일단 소설은 1930년대 스위스 영화감독 에밀 네겔리와, 그와 영화 합작을 하려는 일본인 관료 아마카스 마사히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에밀 네겔리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영화 합작을 하려는 일본인 관료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이들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로 귀결되는가. 라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들이 두 세 페이지의 작은 챕터로 영화 스토리보드처럼 이어져 있다. 글로 만들어진 스토리보드라고 할까. 게다가 소설은 일본 전통 연극 ‘노’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큰 챕터는 1부 조, 2부 하, 3부 규 이다. 조-하-규는 노의 본질로, “1막 ‘조’에서는 사건의 템포가 느리게 출발하여 기대를 고조시키고 2막 ‘하’에서는 속도가 빨라지다가 마지막 ‘규’에서는, 단박에,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절정으로 치닫는다.” p101 그 말처럼 1부 조가 분량이 제일 길고,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느리게 진행되고, 2부 하에서 갈등이 생기며 속도가 빨라지다가 3부 규에서 절정에 이르고 소설이 끝난다. 3부가 분량이 제일 짧다.


그러면 <망자들>이 왜 영화와 노를 연상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나 질문할 수 있는데, 소설은 노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채플린은 사전에 노에서 가장 빼어난 이야기는 행위의 부재, 대표적 인물의 부재, 더 나아가 혼령의 존재를 특징으로 한다는 것을 배웠다.” p100 인물의 부재는 <망자들>에 등장하는 수많은 죽음과 엮인다. <망자들>은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 소설 첫 장면은 한 일본 장교의 할복자살이고, 마지막 장면은, 에밀 네겔리와 아마카스 마사히코의 연인이었던 이다의 죽음이다. 그런데 장교의 할복자살은 사실은 카메라가 촬영한 연기이고, 이다의 죽음은 그가 폭행당하는 게 카메라로 찍힌 뒤에 (카메라를 상징하는) 헐리우드 간판 H 위에 올라가서 자살하는 것이다. 사진기자는 죽은 이다를 찍는다. 소설은 인물의 부재라는 죽음을 카메라와 연결시킨다.


1. 그 카메라는 폭력적인 카메라이다.

카메라는 물리적 폭력, 죽어가는 모습, 시체를 찍고, 사랑에 대한 폭력(불륜)도 찍는다. 칼 없는 전투를 수행하는 전쟁선전용이며, 영화배우는 연기하는 모습이 아니라 총을 들고 폭력을 행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어릴 때 폭력을 경험했다.

2. 그 카메라는 피사체를 존재하게 만든다.

카메라가 보는 것은 감독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자 관객이 보는 것이다. 풍경이 프레임으로 잡힐 때 프레임 안의 것만 볼 수 있고 밖은 볼 수 없다. 프레임 안의 것은 존재하고 밖에 있는 것은 부재한다. 그러나 관객은 프레임 밖에 있는 것을 추론하고 이야기하고, 부재하는 것은 다시 존재한다. 한마디로 영화는 존재와 부재의 예술인 것이다. ‘존재-부재-존재’는 소설에서 이렇게 묘사된다. 네겔리는 이다와 마사히코를 찍은 영화(존재)를 상영했다. 이런 소문이 일어난다. 스크린에 등장한 이다가 마사히코와 결혼해서 헐리우드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네겔리는 언젠가 헐리우드에서 이다를 만나면 영화를 같이 찍어야겠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다와 마사히코는 이미 죽었다(부재). 실제로는 부재하지만 스크린에서 본 사람들은 그들이 존재한다고 여긴다(존재).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존재와 부재를 말한다. 카메라의 눈이 폭력, 그리움, 우월한 시선, 호기심을 표출하기도 하는데 무엇을 표출하더라도 부각되는 것은 존재와 부재이다. 존재와 부재는 노의 특징이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 수많은 죽음이 등장하는 것, 영화감독과 배우의 이야기(영화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 소설이 영화와 노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연결이 된다. 정말 좋은 소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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