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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미첼 - 삶을 노래하다 ㅣ 현대 예술의 거장
데이비드 야프 지음, 이경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평점 :
아서 밀러의 희곡 <시련>에서 제일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마녀사냥이다. 사회의 지배이념과 인간의 이기심은 광기를 만들고, 광기는 인간과 사회를 파괴한다. 마녀사냥은 광기가 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련>을 무대에 올리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생긴다. (아서 밀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녀 티투바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인데 티투바가 흑인 하녀이기 때문이다. 흑인 배우를 쓰면 될 것같지만 한국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 흑인 배우를 구하기는 어려우니 연출가는 얼굴이 누런 한국인 배우를 검게 분장을 시킨다. 그러면 레이시즘이라는 비난이 생긴다.
티투바는 카리브해 바비도스 출신 하녀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데 노예와 흑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억울함을 당한다. 흑인 하녀라는, 티투바의 정체성은 작품과 긴밀히 묶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가는 티투바를 흑인으로 표현할 필요를 느낄테고, 분장을 시켜야겠다 생각할 것이다. 2015년 국립극단이 박정희 연출로 <시련>을 무대에 올렸을 때 티투바 역을 한 한국인 배우의 얼굴은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고 적갈색이었다. 2019년에 강민재 연출로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시련>을 올렸을 때 티투바 역을 한 한국인 배우의 얼굴은 분장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옅어졌다. 분장을 옅게 한 것에서 연출가가 고민했을 것이라 짐작이 되는데 그래도 항의는 따라붙었다. 분장을 옅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흑인을 표현하기 위해서 분장을 했다는 그 자체가 레이시즘이라는 것이다.
연출가가 레이시즘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어 논란이 될 때 연출가는 고민할 것같다. 내가 연출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네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1) 배우를 검게 분장시킨다. 일부러 논란을 만들며 같이 생각하자고 한다. 2)실제 흑인을 배우로 쓴다. 3)연극의 설정을 바꾼다. 티투바를 바비도스 출신 흑인 하녀가 아니라 베이징 출신 중국인 하녀 또는 한양 출신 조선인 하녀로 바꾼다. 4)작품을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한다. 하녀 티투바를 조선족 가정부로 설정한다. 나는 4번을 선택할 것같다. 재해석하는 게 매력이 있고, 조선족에 대한 낙인이 있는 요즘을 생각한다면 <시련>을 지금의 문제로 더 가깝게 볼 수 있을 것같다.
연극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때 아서 밀러의 <시련>은 내 옆에 있는 마녀사냥, 나도 저지르는 마녀사냥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현 시대의 레이시즘을 비추는 거울도 되고 있다. 흥미롭다. <시련>을 왜 생각했냐면, 데이비드 야프의 평전 <조니 미첼>에서 <Don Juan‘s Reckless Daughter> 앨범 뒷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앨범 재킷에는 춤을 추는 세 명의 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한 명,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은 흑인 남성이다. 그런데 그 흑인 남성은 조니 미첼이 분장한 것이다. 이것을 몰랐던 사람이 많았는데 흑인 잡지는 호의적인 리뷰를 썼다고 하고, 흑인들은 이 앨범을 흑인이 만든 앨범으로 알고 구입했다고 한다. 조니 미첼은 자기 안에 흑인인 자아가 있고 흑인 남성과 강한 유대를 느낀다고 말했다.(이름이 아르 누보이고 포주이다.) 당시 조니 미첼은 돈 에일리어스라는 흑인 음악가와 사귀고 있었다. 이 앨범에는 웨인 쇼터, 차카 칸, 돈 에일리어스라는 흑인 뮤지션이 참여 했다. 그들은 조니 미첼의 저 행위에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같다. 차카 칸은 “그녀는 흑인의 삶을 살고 노래로 불렀으며, 흑인 그 자체였어요. 나도 마찬가지였고요. 그건 참 멋진 작품이었어요. 훌륭했고요.“ p480 라고 말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레이시즘에 대한 감수성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하나? 이들이 조니 미첼의 본심을 알았기 때문인가? 앨범 재킷은 지엽적일 뿐 중요한 것은 음악 그 자체인가? 조니 미첼이 이 문제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2015년 뉴욕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조니 미첼은 즐거웠던 기억으로 회상하고 있다. 평전은 “조니는 사람들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 모습을 이해한’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는 그런 데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p481 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조니 미첼이 이 앨범을 발표한다면 똑같이 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