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문장 - 흔들리는 마흔에 참 나를 되찾게 해 준
길화경 지음 / 유노라이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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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읽고, 쓰기.​
나에게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단어들의 조합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하프 마라톤에도 두 번 출전하고(비록 거의 기어서 들어갔지만ㅎㅎ) 10km 달리기에는 제법 여러번 참가했을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출산과 함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체력과 무릎 연골은 안드로메다로 떠났고, 지금은 놀이터에서 날아다니는 아이들 뒤꽁무니 쫓기에도 버거워 헉헉댄다.

예전처럼 콧속에 찬 바람 넣으며 달리고 싶다가도 매일 똑같은 일상에 생기를 잃고 잠 한숨이 아까워 이불 속에서 발만 비비적 대던 나에게 책 속의 문장 하나가 꽂혔다.

"마음을 지치게 하는 너저분한 생각을 '완료형의 행동'으로 지워가다보면 그 자리에 새살이 차오르듯 내 생각이 기분 좋게 들어온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오늘은 이것도 못했고 저것도 못했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시간과 체력은 왜 이리도 늘상 부족하고 형편없는지.

읽고 싶어 샀지만 읽지 못한 책이 쌓이고,
써야지 했지만 쓰지 못한 글감도 쌓이고.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만큼이나 쌓이는 해내지 못한 실패의 경험.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책은 덤.

애쓰고 있다 자기 위안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수렁에 빠진듯 생각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이제와 무슨 달리기야.
이렇게 나이 드는구나.​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마음이 먼저 늙은 사람', 딱 나였다. 그런데, 저자가 달리면서 했던 생각들, 달리고 나서부터 할 수 있었던 행동들, 말 그대로 달리고, 읽고, 쓴 그녀의 기록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끓었다.

달리고 싶다.
깊고 넓게 읽고 싶다.
내 글을 쓰고 싶다.​

간호사, 경력단절, 논술교사로 직업을 바꾸는 과정에서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짐작이 간다. 맨날 왜 그렇게 열심히 뛰냐는 동네 엄마의 질문에 '살려고요!'라고 대답하는 그 마음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겠다. 그래서 그녀가 더 단단해 보인다. 그 시간 속에서도 꾸준히 마음을 채우고 체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인생을 한번에 바꾸기는 어려워도 하루에 한 시간은 바꿀수 있다.
달라지고 싶은 전체의 모습에서 한 조각씩만 다르게 살아보는거다.
그 조각이 모여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는 '꿈을 향해 노력하라'는 진부한 말대신,
하루 한 시간씩 내가 되고 싶은 모습대로 살아보라고 말한다.

맞다. 당장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한데 일만시간의 법칙처럼 하루 3시간씩 10년 노력은 너무 멀고 버겁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라는 것은 오늘의 나에게 가혹하다.

그러니 그저 하루 중 잠깐이라도 내가 그리는 모습대로 살아보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 잠깐의 시간 중에 행복해진다면 더 좋고. 그 길을 가다가 진짜 그 모습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고.

저자는 매 꼭지마다 여러 책과 노래, 기사 내용을 인용하고 발췌해 담았다. 그 분야가 얼마나 다양하고 넓은지 역시 '읽고 쓰는' 내공이 이 정도는 되어야 출간 작가가 되는건가 싶을 정도다. 그 내용마저 인용문과 저자의 사색이 잘 어우러져 구구절절 마음을 후벼판다. 저자가 언급한 책 리스트를 꼽아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깊은 사색과 통찰을 엿보며 잠시 그녀를 상상해본다. 뜨거운 숨을 훅훅 뱉으며 폐 속 깊이 시원한 공기를 채우고, 땀흘리며 뛰어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잔잔하면서도 굽이굽이 이어지는 일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 상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나도 그런 모습이고 싶다.
온화하면서도 단단하고, 차분하면서도 뜨거운.

며칠전 쓴 버킷리스트를 꺼내어 봤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작가 되기 : 내가 쓴 책 10권 갖기'
적을 때는 '너무 거창한가?' 했는데 오늘 보니 다르다.
오늘 당장 내가 되고 싶은 모습대로 살면 될 일이다.
마라톤처럼 놀이터를 뛰고 작가가 된 양 글을 쓰면 되니까.

무겁지 않으면서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책,
마흔 언저리에 있지 않아도 참 좋은 책,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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