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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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는 나보다 100년은 먼저 태어나신 분들의 책을 읽었다. 20대에는 나보다 10-20살 정도 많은 작가의 책을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또래의 작가들의 책을 읽고 있다. 어느새 내 또래의 사람들이 주류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글은 10대에 읽었던 100살 많은 사람들의 글처럼 계몽이나 교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20대에 읽었던 현실에 대한 자아비판은 없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이야기들이 다양한 의미를 담고 다가온다. 답을 요구하거나 친절한 해설 따위는 사라졌다. 읽고 어떻게 느끼느냐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준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오기라는 사나이가 있다.   함께 타고 있던 아내는 죽었다. 가족이라고는 죽은 아내의 어머니인 장모뿐이다. 장모는 사위를 돌본다. 친절하던 장모의 손길과 눈길이 어느새 싸늘해지고 거칠어진다. 장모는  집을 외부로부터 차단시키고 마당에는 커다란 구멍이를 판다. 오기의 생각을 따라가본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서, 아내와 결혼을 위해 상견례 할 때 장모의 말들, 성공을 위해 달리던 시간들, 무엇이든지 싫증을 잘 내고 쉽게 포기하던 아내, 아내가 쓴 글을 비평하던 일, 죽기 전 아내가 화를 내며 이야기했던 말을,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고 발문에 대해 생각한다. 장모가 그 글을 읽었을 것이다.

  [몬순]으로 2014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편혜영 작가의 소설이다.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은 200여 쪽의 소설이다. 단숨에 읽었다.  글이 담담하다. 아침드라마라면 격정적인 표정과 말투가 쏟아져 나올만한 장면도 멀찍이 앉아 다른 사람 얘기하듯 건조하다. 그러나 내용은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책을 잡으면 단번에 읽을 수밖에 없다. 자신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상처를 준다. 자신은 이미 끝난 일이 다른 이에게는 계속 진행 중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을 흠집 내는 일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의 시작은 누구의 잘못 때문이다. 그렇게 작은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이 점점 커져 그 구멍 속에 빠져버린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구멍을 내고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장모는 간파한 것 같았다. 오기는 가지지 못한 것 대문에 자격지심을 가질 만한 인간이라는걸, 그다지 반듯하게 자라지 못했다는 걸 말이다. 자인은 그걸 핀잔했고 장모는 세련된 방식으로 상기시켰다. 62

오기가 생각하기에 아내의 불행은 그것이었다. 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나 그것을 중도에 포기해버린다는 것. 87

생각해보면 오기는 아내에게 줄곧 의심받았다. 아내는 오기를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고, 지속적으로 누군가에게 연인 관계를 원하다고 주장했다. 자주 오기에게 이전과 달 졌다고 했고 무턱대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오기가 명성을 쌓는 데 몰두해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오기를 속물이라고 단정하며 누살을 찌푸릴 때도 있었다. 오기의 손을 뿌리쳤고 다가가면 멀찍이 물러섰다. 그런 일들이 오기를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지 아내는 몰랐다. 후에 제이를 안고나서 오기는 내심 그런 아내 탓을 했다. 180

  우는 아내를 보며 오기는 웃었다. 이게 슬픈가. 겨우 이런 얘기로 우네. 아내가 이렇게 감상적이었나.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달래고 싶었다. 우리는 무사할 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너머로 홀로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섣부른 이해 없이 아내를 슬픔에서 천천히 건너오게 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나중에야 들었다.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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