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예술가들 - 남다른 아이디어로 성공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대하여
윌 곰퍼츠 지음, 강나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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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그림을 그려도 되겠느냐고,

글을 써도 되겠느냐고,

연기나 노래를 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그저 실행할 뿐이다.

<발칙한 예술가들>, '들어가며' 中

첫 번째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언급되어서, 두 번째는 그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여전한 호기심이 나를 <발칙한 예술가들> 앞으로 끌어들였다. 표지에 적힌 '남다른 아이디어로 성공한 예술가'라는 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잠깐 엿본 아이디어가 내 것이 될 거라고 믿지 않았다.

윌 곰퍼츠는 예술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깨부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술가의 창조성'에 대해 말하면서 그는 결코 감정적이거나 감성적인 부분에 기대 설명하지 않았다. 윌 곰퍼츠에게 예술이란 측량가능한 것, 이성적이며 촘촘한 계획 하에서 생산된 결과물이었다. 공식대로만 한다면 모두 예술가가,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예술가는 곧 사업가다.

자신의 창작욕을 만족시키는 작품활동을

독자적으로 지속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한다.

…(중략)…

오로지 작품을 팔아서 돈을 갚고

다음 작품에 투자할 수 있을 만큼

이윤을 남기겠다는 희망 하나로 말이다.

<발칙한 예술가들>, '초라한 낭만보다 우아한 전략' 中

빈센트 반 고흐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후원자였던 남동생 테오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각별한 사이는 주고 받은 편지의 내용과 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윌 곰퍼츠는 책의 시작부터 애틋한 두 사람의 관계를 와장창 깨놓는다. 저자는 테오와 빈센트의 관계를 투자자와 벤처 사업가로 새롭게 정의한다. 지금까지 빈센트의 작품을 감상하고 생애를 들여다보면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시각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두 사람 사이를 오간 수백 통의 편지는 빈센트의 그림 작업에 대한 진척을 알리는 보고서가 된다. 테오는 유망한 화가에 투자한 그림상이었고, 빈센트는 고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신을 꺾을 수 있는 화가였다. 안타깝게도 빈센트 반 고흐 주식회사는 두 사람의 생전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실패했다는 기분을 느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가떨어진다.

…(중략)…

예술가는 이러한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발칙한 예술가들>, '시도와 실패, 다시 실패 그리고 눈부신 성공' 中

데이비드 오길비는 영국 광고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옥스퍼드대학에 중퇴한 이후 그는 파리의 한 호텔에서 일했다. 영국에 돌아와 조리용 스토브 방문 판매를 했고, 미국으로 가 여론 조사 회사에서 근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워싱턴 영국 대사관에서 정보원으로,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 카운티에서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기독교 일파인 아미시 사회의 일원이 되어 농부로 살았다.

이런 그가 어떻게 광고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는 호텔에서 고된 일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습관을, 여론 조사 회사에서 근무하며 통찰력을, 아미시 사회에서는 공감 능력을 얻었다. 방문판매를 하며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정보원으로 일하며 정확한 언어의 중요성을 배웠다. 무엇보다 그는 광고를 사랑했다. 그의 과거 여정은 실패가 아니라 광고로 가기 위한 중간 정착지였다. 이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데이비드 오길비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여동생에게 해주고 싶었다. 육아 등을 이유로 오랫동안 근무한 회사를 그만둔 후 동생의 커리어는 점점 다양해졌다. 어떤 분야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일관적이지 않은 커리어가 동생에겐 콤플렉스인 듯했다. 너는 아직 여정 중에 있다고, 언젠가 네가 정말 원하는 곳에 꼭 도착할 거라고 동생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읽었다면 당근을 그려 주세요!)


역사는 이 작품들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그저 재미 삼아 아무렇게 실행해 본

시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삶은 부서지기 쉬운 것이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의 신뢰와 고통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탐구한

진지한 작품이라고 말이다.

<발칙한 예술가들>, '진지한 호기심의 가치' 中

윌 곰퍼츠의 <발칙한 예술가들>은 예술가들이 어떻게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예술 전문 저널리스트라는 이력이 도드라지는 작품 해설이라든가, 작가와의 인터뷰가 함께 기술되어 있는데 '진지한 호기심의 가치' 파트에 가장 강렬했던 건 <정지 에너지>(1980)라는 작품의 해설이었다.

1980년에는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극단에 이른 작품 <정지 에너지 Rest Energy>을 선보였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마주보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둘 사이에 활과 화살이 있었다. 마리나가 활의 앞부분을 잡았고, 울라이가 시위를 당겼다. 화살의 끝은 마리나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팽팽한 활과 당장이라도 활을 발사할 수 있는 시위를 양쪽에서 붙잡은 채 몸을 뒤로 기울여, 서로의 반대쪽을 향하는 힘으로 균형을 잡았다. 둘 중 한 사람이 쓰러지거나 잡고 있는 것을 놓치거나 혹은 집중력을 잃으면 마리나는 죽을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의 심장 부근에 설치된 마이크와 이어폰을 통해 서로의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었기에 긴장감은 더 높았다.

<발칙한 예술가들>, '진지한 호기심의 가치' 中

현대미술, 특히 행위 예술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부분이 많은 영역이다. 이 책에서는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작품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정지 에너지>에 대한 묘사와 해설 읽을 때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이 작품의 강렬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재밌네.'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스쳐갔던 모든 예술 작품들이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정지 에너지>의 이미지를 검색해봤다. 해설 없이 접했다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만큼 강하고 자극적인 충격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윌 곰퍼츠의 글을 읽으면 예술이 더 궁금해진다. 그리고 지난 날의 쉽게 쓰인 감상들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빈센트 반 고흐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우리가 아무것도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은 어떻게 될까?"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삶의 의미가 희미해질 정도로

지루해질 것이다."

<발칙한 예술가들>, '용기가 필요한 일' 中

윌 곰퍼츠가 예술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대세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을 끄는 것을 찾을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것. 완벽한 정답은 없으니 자신의 완성품에 자신감을 가지고 용기 있게 세상에 선보일 것, 그것이 삶에 대한 그의 답이다.

창조성은 예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구간에서 우리는 창조성을 발휘해야 한다. 윌 곰퍼츠는 그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예술에 빗대었을 뿐이다. <발칙한 예술가들>이라는 제목 때문에 예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읽지 않고 지나칠까봐 두렵다. 표지 때문에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이 책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스쳐지날까봐 걱정된다. 하지만 윌 곰퍼츠의 말대로 완벽한 정답은 없다. 이제는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선보이는 것만 남았을 뿐.

<발칙한 예술가들>을 읽으며 윌 곰퍼츠의 <발칙한 현대미술사>가 궁금해졌다. 내가 무심히 스쳐보냈던 현대미술 작품들을 윌 곰퍼츠의 해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아직 더 읽을 수 있는 윌 곰퍼츠의 책이 남아있다는 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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