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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0년 전, 마을의 폐공터에서 어린 소녀 아나의 토막나고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된다. 그녀의 언니 리아는 동생의 장례식장에서 자신은 무신론자라는, 당시 사회를 몹시 충격적인 선언을 마지막으로 동네를, 나라를 떠난다. 자신이 왜 살아온 동네를 떠나게 되었는지를 담담히 떠올리는 리아의 회상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사실 처음 서평단을 신청할 때 눈길을 끌었던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간략한 소개문이었다. 어딘지 허술한 범죄 현장과 풀리지 않은 사건의 진상, 그리고 30년간 홀로 수사를 진행해왔던 아버지는 단 세 통의 편지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품은 미스터리 범죄스릴러소설처럼 느껴지는 소개문에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겨보니 그보다는 종교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회에 의문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는 그런 소설에 더 가깝다는 인상이 들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통렬한 녹취록이나 기고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랄까.
가끔씩 선 밖의 사람들에게 무척 모질고 배타적으로 구는 일부 종교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말하는 '우리'나 '모두'가 상당히 제한적이고 조건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을 서사에 녹여내어 통렬하게 꼬집는다. 종교에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카르멘이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심지어 그것은 소위 말하는 사랑 때문도 아닌 것 같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것이 죄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할 뿐만 아니라, 당연히 누군가가 했어야 할 어떤 숭고한 희생이나 봉사, 고난처럼 이야기한다.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책임을 미룰 뿐인 훌리안 옆의 그녀를 보고 있자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부인이 생각난다. 그런 그녀가 한편으로는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한 리아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녀의 삶에 중도란 없다. 믿음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니까.
어떤 파트를 읽으면서는 그들이 따뜻한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또 어떤 파트를 읽으면서는 그들이 혹독하게 죗값을 치르기를 간절히 바라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이 소설은 평범한 범죄소설처럼 주인공에게 따뜻한 결말을, 범인에게 잔혹한 결말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책을 읽는) 우리는 알고 있는 진실을 알프레도는 편지에 명시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나는 우리 각자가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진실까지만 도달한다고 믿는단다.(415p)"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남길 뿐으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영혼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음을 짐작하기만 할 뿐이다.
이야기가 가진 모든 패는 이미 우리 앞에 펼쳐졌다. 이 뒷장을 어떻게 엮어나갈지는 리아와 메테오, 혹은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마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웃음이니까(408p).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살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사막, 무인도, 산꼭대기, 화성, 전쟁 중인 나라, 그리고 밀림이 그런 곳이다. 하지만 내게는 우리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 - P79
나는 그 어떤 범죄를 저지르지도, 죄악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면 이 잔이 저를 비껴가게 해주십시오." - P356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유를 설명할 생각은 없다. 굳이 내가 설명해야 한다면 그곳은 이 지상이 아니라 다른 곳이다. 하지만 내 아들에게는 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그 아이에게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싶다. 그 아이는 마땅히 모든 사실을 알아야 한다. - P357
사랑하는 무신론자 여러분, 만약 앞에 쓴 문장을 읽고 웃음이 나온다면 계속 웃도록 하렴.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웃음이니까. - P408
나는 우리 각자가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진실까지만 도달한다고 믿는단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그 이상은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지. 그건 우리 자신의 보호 본능에 의해 정해진 한계점이니까. 비록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내게 허용된 한계점은 지금 너희에게 이야기하는 것까지란다. - P415
그것들을 보여주기 전에 그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내가 그 자료들을 보고 충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알프레도 아저씨는 문서를 보여주기 전에 내게 양해를 구한다." 나는 충격을 받더라도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 때 그렇게 웃었기를 바란다. 공포에 휩싸인 가운데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알프레도 아저씨는 공허한 내 삶에 나타난 좋은 동반자였다. - P210
아나가 죽기 전과 죽고 난 다음, 우리 모두는 지금 각자가 있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나는 그들을 따라 가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이 길 대신 저 길로 가라고 강요한 적도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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