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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원 - 시리 허스트베트 에세이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9월
평점 :
에세이는 오래간만이다. 좋아하는 이다혜 작가의 강렬한 한 마디 추천사에 끌려 서평단을 신청했다. 에세이라기보다는 진지하고 심오한 인문서적처럼 생긴 표지를 펼치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친할머니는 괄괄하고 뚱뚱하고 요지부동이었다." - 7p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할머니에 대한 강렬한 단상으로 시작된 에세이는 어머니를 지나 이윽고 시리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녀는 할머니를 때때로 틸리라고, 어머니를 에스테르라고 부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부분은 오히려 그녀의 뿌리가 어머니에서, 그리고 할머니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준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와 현재를 정신없이 넘나드는 에세이를 읽다보면 이 한 권의 이야기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보다는 인식의 확장에 더 무게를 두고 배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마다 다르게-그러나 핵심적으로는 대개 비슷하게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들, 언제든 나쁜 엄마로 바뀔 수 있다는 공포를 내재한 '좋은' 엄마라는 개념, 마치 커다란 천칭 위에 올려진 듯한 '아내의 권위'와 '남편의 권위' 사이의 관계(정확하게는, 사실은 완전히 별개의 개념인 이 두 요소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스스로를 '하얀 피부와 계급 덕분에 이런 위상을 공짜로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미국 백인 여성'이라고 일컫는 시리의 시선은 폐부를 꿰뚫는 것처럼 날카롭고 정확하다. 하지만 분노만 가득한 글은 아니다. 시리와 마찬가지로 저명한 소설가인 남편으로 인해 일어난 소소한 에피소드(비록 남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는 반대에 가까웠지만)는 날카롭게 현실을 꼬집어 보여주면서도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
<어머니의 기원>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 사회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시리 자신만의 시각으로 들이받는 이야기의 묶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학과 예술, 그리고 그녀가 학자로서 탐구하는 분야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나 <폭풍의 언덕>은 나에게도 읽기의 즐거움과 충격에 대해 알려준 강렬한 소설이어서, [읽기라는 수수께끼] 이야기는 특별히 더 즐겁게 읽었다. 대학 시절에 피상적으로 배우고 흘려보냈던 루이즈 부르주아에 대한 다층적인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20개의 에세이를 묶은 이 책, 결코 가볍지 않다. 시리는 자신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독자 옆에 멈추어서서 친절하고 참을성 있게 설명해주는 부류의 작가가 아니다. 그녀는 확고하고 자신의 속도가 있다. 그녀를 따라갈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출판사로부터 서평용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