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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이름의 숲
아밀 지음 / 허블 / 2023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눈 앞의 풍경이 현실이 아닌 시대, 모든 사람이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근미래 서울에 가상현실저항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소녀, 숲이 있다. 그러니까 숲은 말하자면 세계에서 반쯤 추방된 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숲의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에 유일한 빛은 아이돌 '이채'다. 가상현실 속에 만들어진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기에 숲이 보고 듣는 이채는 반쪽짜리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숲은 이채를, 이채의 노래를 좋아한다. 말 그대로 이채는 숲의 '아이돌'이다. 그런 숲에게, 이채의 신곡 뮤직비디오 촬영에 엑스트라로 참여하는...즉 이채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아이돌로서 이채를 사랑하던 숲이 선을 넘어 한 걸음 더 성큼 다가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람은 언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 사랑하게 되는 것은 정말로 그 사람인가? 아니면 단지 내가 만들어낸, 내가 사랑하고 싶은은 어떤 가공된 상상의 형태일 뿐인가? 상대가 원하는, 잘 꾸며지고 필터링된 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러낼 수 있을까? 그 진실된 모습을 마주했을 때 상대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경멸하고 실망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영원히 진실을 감추고 꾸며낸 모습으로 존재해도 되는 걸까? 그걸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과 미움은 상쇄될 수 없다. 1만큼 미움받지만 10만큼 사랑받으니 괜찮은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10만큼, 100만큼, 1000만큼 사랑받아도 1만큼의 미움에 상처받는 것이 인간이다. 이채가 너는 네 머릿속에 있는 나를 사랑하는 거라고, 그래서 네 눈 앞에 있는 나는 경멸하는 거라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아이러니컬하게도 숲은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왔던, 스스로도 부정해왔던 진심을 내보인다.
『너라는 이름의 숲』은 아칸다바이러스라고 하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대면이 최소화되고 가상현실이 일상이 된 서울을 배경으로, 무대 위의 가공된 형태로 아름답게 존재해야 하는 '아이돌'과 그런 아이돌을 사랑하는 '팬'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들이 모든 선을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부딪칠 때 어떤 불꽃이 피어오르는지, 그리고 그 불꽃이 그다지 아름답고 귀여운 형태만은 아니라는 것까지도 솔직하게 말하는 소설이다.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 사람을 사랑하려면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쳐야한다고 말하는 소설.
간만에 마음 따뜻해지는 사랑스러운 SF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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