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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서점
서점을 잇는 사람들 지음 / 니라이카나이 / 2025년 11월
평점 :
-주인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도시의 여러 소음과 라디오 소리가 뒤섞이고 책장에서 책장으로 이어지는 미로 안으로 따뜻한 볕이 들던 오래된 헌책방.(p125)
재미있고 특별한 일본의 서점을 소개하는 에세이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어디에도 소개되지 않은 책방들을 다룬다고 했고, 이런 서점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다 읽고도 한참 지난 뒤에야 보게 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서점은 전부 허구입니다.’ 책의 시작부에 서점 위치가 표시된 지도까지 있었던 터라, 꽤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사랑한 서점>은 다시 갈 수 없는, 문을 닫은 서점의 기억을 담은 책이다. 읽다가 이것도 상상은 아니겠지, 하고 슬쩍 뒷부분부터 넘겨봤다. 알찬 별책부록-필자 서점지기들이 추천하는 동네 서점과 가 보고 싶은 서점-이 등장한다! 아닌 걸 알면서도 오래전 읽은 에세이를 잠시나마 떠올린 건 열다섯 명의 독립서점 운영자가 풀어낸 기억 속 서점이 저마다의 빛깔을 갖고 있어서였을 거다.
이름만으로도 왜인지 가고 싶고 궁금해지는 ‘동쪽바다 책방,‘(쉼표도 상호에 포함된다)은 책방지기가 여행을 떠나며 책방 열쇠를 건네주어 한동안 필자에게 나만의 방이 되어 주었던 서점이다. 그림책 읽어봤어요? 묻고는 직접 읽어 주어 이야기의 세계로 안내하는 대표님이 있는 계룡문고, 헌책 가득한 공간에 주인장은 없거나 있어도 자고 있는 낡고 넓은 책나라 같은 월계서점...... 여기 다 옮기지 못한 다채로운 서점을, 그동안 몰랐던 서점을 이제야 만난다. 그곳이 사라지고 나서야.
서점지기가 사랑한 서점은 물론 허구도 상상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라진 서점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상상을 필요로 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책을 펼쳤다면, 여러 번 읽게 되는 문장이 있다. ‘서점은 문을 닫았다.’ 문장 안의 상호명이 바뀌며, 같거나 비슷하게 반복되는 동안 저마다의 기억은 하나의 결과 흐름으로 엮인다. 이 문장이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다 해도 문을 닫은 서점을 다룬다는 전제를 이미 알기에 지금 얘기하는 이곳이 언젠가 사라질 텐데, 생각하며 읽게 된다.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 평온하고 의미 있는 순간일수록 쓸쓸함과 아쉬움을 함께 느끼면서.
서점지기들의 기억 속 서점은 국내 곳곳에서 어느 시절을 버티었다. 고심하여 꺼내놓았을 그 기억들이 책 한 권에 담긴 힘은 서점의 운영과 운명을 아우르는 지역 사회의 이야기로, 필연적인 이별을 담지한 보편적 삶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두 번째 쳅터에서 필자는 바울서점에서 만난 책, 박완서의 <부숭이의 땅힘>을 소개한다. 시골에서 온 부숭이의 ‘땅힘’에서부터 ‘책힘’을 끌어온다. 책을 고르고 읽고 밑줄을 그을 때, 책장을 넘기며 울고 웃을 때 책힘이 자란다고. 책힘 따라 걷고, 어딘가 닿아 가겠지, 하고.
이 책의 지은이는 ‘서점을 잇는 사람들‘로 표기 되어 있다. 머릿속 지도에 동네 서점들을 줄로 이어 본다. 잇고 이어서 줄이 많아지고 촘촘해지면 우리가 딛고 설 땅도 더 단단해 지겠지, 생각하며.
-사라진 것을 기억하는 자들에게 사라진 것은 사라지지 않은 것만큼이나 확실하다. (p125)
사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길을 가다가 독립서점이 보이면 들어가자. 그리고 책을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