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이라고 하면 산속에 덩그러니 자리한 문 달린 오두막집이 떠오른다. 내 상상 속 오두막집은 늘 나무가 없는 허허벌판에 있어서 멀리서도 잘 보이는데, 이 책을 보고 떠올린 ‘산문집’은 나무가 빽빽한 곳에 있어 오두막집의 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은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동네 종합병원 앞 집에서부터 블루베리 나무와 함께 살기까지. 그 과정과 우여곡절이 성글게 기록된 책이다.여백이 많고 상냥한 글이지만 빨리 읽히진 않는다. 아무래도 저자의 투병 경험이 중심에 있는 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중환자실을 오가며 사경을 헤맨 그는 대략 20일간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상태가 호전된 후 가족들에게 들은 대로 재구성한 기억뿐이라고. 이 기억을 잃어버린 걸 몹시 아쉬워하던데 독자 입장에선 그 기억들이 느껴졌다. 저자의 머릿속에선 사라졌지만 여전히 몸에 남아 글에 묻어나는 듯했다. 180도 다른 사람이 되진 않았지만 예전이라면 거절했을 일을 조금씩 해보는 것. 실패와 완벽하지 못함을 덜 두려워하기 위해 애쓰는 것. 투병 후의 삶은 변했으나 크게 변하진 않았고, 응급실에 가기 전과 마찬가지로 하루가 꼬박꼬박 주어진다. 저자가 내딛는 정처 없는 걸음에 나무와 여름씨가 함께하는걸 보는 게 좋았다.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이 마지막 책이 되지 않도록 저자가 부디 힘내주길 바라는 마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