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단 11기 #서평단]‘소설, 잇다’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미래를 바라보는 시리즈다. 이번에 출시된 『백룸』은 이선희의 소설 두 편「계산서」, 「여인 명령」)과 천희란의 소설 한 편·에세이 한 편(「백룸」·「우리는 이다음의 지옥도 찾아내고 말 테니까」)이 담겼다. 세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두 작가와 네 편의 글이 ‘백룸’이란 제목으로 묶인 이유.“백룸은 일종의 미궁이다. 현실의 이면이라고도 할 수 있고, 숨겨진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429~430p) 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후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다 집을 나온 「계산서」의 ‘나’. 연모하는 이와 뜻하지 않게 이별하고 서울과 시골과 섬을 떠도는 「여인 명령」의 숙채.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후 벌어진 사건에 잠식되는 게임 스트리머 ‘나’까지. “백룸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 무한히 펼쳐진다. (…) 어두침침하고 축축한 복도를 따라가는 내내 자신의 위치나 시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430p)두 명의 ‘나’와 숙채가 자꾸만 현실에서 미끄러지는 걸 보면서 그들이 발붙이고 있는 곳이 백룸이 아닐까 싶었다. 가정이나 연인 사이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이기에 조금만 틀어져도 치명적인 공간. 자신의 위치를 놓치기 쉬운 공간. 백룸의 다른 이름은 지옥일 것이고, 그 이면인 현실도 마찬가지로 지옥이다. 그러니까 천희란의 에세이에서 말하듯이 지옥의 이면에 유토피아는 없고 또 다른 지옥이 있을 뿐. 그렇다고 해서 『백룸』이 염세적인 책인 건 아니다. 현실이 그랬을 뿐이다.“「여인 명령」에 그려진 것처럼 1930년대 신여성들에게 화장은 전통적인 가치관에 비추어서는 ”죄“이면서 세 시대의 자유이기도 했음을 떠올리면 한결같은 여성 억압의 기제와 달리 해방의 이상이 항상 같았던 것은 아니다.”(466p) 천희란의 에세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다. 숙채의 어머니에 비하면 숙채가 더 자유롭고, 숙채에 비하면 「백룸」의 ‘나’는 더더 자유롭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우린 늘 누구보다도 나은 삶을 사는 셈인데, 나는 도무지 그런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억압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진화해서 교묘해졌다고 느낀다. 이걸 이선희의 소설 덕분에 명확하게 느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좋은 시리즈 덕분에 한 값진 경험.+) ‘소설, 잇다’ 시리즈 오래오래 해주세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