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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1년 8월
평점 :
[밝은세상 #서평단]
평행세계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종종 생각했다. 거의 흡사한 세계가 여러 개 존재해서 좋은 게 뭘까. 이쪽의 '나'와 저쪽의'나'가 전혀 다른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일까. 둘은 절대 같은 사람일 수 없는데. 그저 어쩌다 같은 환경 속에 놓였을 뿐인데. 이런 의문에 답을 제시한 게 바로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이다.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은 식당 화장실을 통해 저쪽 세계로 건너가게 된 여자 엄주영의 이야기다. 저쪽 세계엔 남 괴롭히는 쓰레기로 자라난 남자 엄주영이 있다. 배중숙 씨와 엄용민 씨 사이에서 태어난 것도, 엄용민 씨가 툭하면 폭력을 행사한 것도, 배중숙 씨가 이를 저지하지 못한 것도 같은데. 같은 환경에서 자란 여자 엄주영과 남자 엄주영은 다르게 컸고다른 걸 배웠다. 여자 엄주영은 사람 눈치 살피는 법을 배웠고 남자 엄주영은 '비웨어(beware), 커션(caution), 워닝(warning)'을 배웠다. 그런 남자 엄주영이 열두 살 어린 심연재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여자 엄주영은 결혼식을 막고자 두 팔 걷어붙인다.
여자 엄주영은 저쪽 세계로 넘어가서야 비로소 과거에서 벗어난다. 스스로 좀먹던 과거를 곱씹는 걸 멈추고 "불행해질 여자를" 구하는 것(58p)에 집중한다. 다소 엉뚱한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저쪽 세계 사람들 덕분이었다. 여자 엄주영은자신의 세계가 아니기에, 저쪽 세계 사람들은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여자 엄주영을 핑계로 범죄를 소탕할 수 있었다. 평행세계의 존재 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서로를 핑계로 대담해질 수 있다는 것.
작가가 가볍고 재치 있게 써서 그렇지,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등장하는 소재나 서사 흐름만 봐도 치가 떨릴 만큼화나거든. 그렇기에 빌런들이 벌 받고 남자 엄주영은 잘못을 시인하는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의 엔딩은 바람에 가깝다. 난 여기에 하나 더 보태고 싶다. 히어로 없이도 잘 굴러가는 세상이기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