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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리커버 특별판)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이봄 #서평단]
<말레피센트>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말레피센트의 세상과 오로라 공주의 세상이 얽히는 순간이 아직도생생하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선 왕자가 무찔러야 할 악당이었던 말레피센트에게도 서사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신선한 기분이었다. 원래도 주인공보단 빌런 캐릭터를 좋아했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서양 문학에서 최초의 마녀인 키르케는 님프 페르세와 태양신 헬리오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그의 이모는 "눈이 노랗고 우는 소리가 특이하고 가늘다"(14p)는 이유로 아이의 이름을 매(hawk)라는 뜻의 키르케라고 지었다. 인간의 목소리를타고난 데다 특출난 능력도 없었기에 신전의 모두가 키르케를 무시한다. 그렇게 학대받던 아이는 본인의 의지로 마녀가된다. 보란 듯이.
『키르케』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오디세이아』에 잠깐 등장하는 키르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이를 돼지로 변신시키고, 오디세이아를 붙잡아 둔다. 저자는 이 대목의 앞뒤에 살을 붙여 '키르케'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빚어냈다. 학대 속에서 자라 어쩌다 아이아이에의 마녀가 됐는지, 오디세이아와 지낼 때 일과 그 후로 어떤일을 겪었는지.
키르케가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신이라는 이유로, 또 혼자 섬에 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은 일들이 키르케를 마녀로 만들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전에도 키르케는 마녀였으나, 그가 겪은 일들이 기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녀' 롤플레잉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거. 그 많은 일을 겪은 키르케가 마침내 사발에 담긴 수액을 마셨을 때 나도 모르게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키르케 같은 캐릭터가 많을 것이다. 큰 이야기의 부품으로 사용된 빌런 캐릭터들 말이다. 굳이 고전까지 거슬러 가지 않더라도 흥미로운 캐릭터가 몇 트럭은 나올 테지. 앞으로 이런 발굴 소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