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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여자들
다이애나 클라크 지음, 변용란 옮김 / 창비 / 2021년 7월
평점 :
[창비 #서평단]
인간은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나는 고집스럽게 대답해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지 인생 지가 조지는 걸 타인이 어떻게 말리겠냐고. 말해봤자 안 들을 게 뻔한데.
『마른 여자들』은 서로를 구하고자 하는 쌍둥이 자매와 주변 여자들의 이야기다. 일란성쌍둥이인 로즈와 릴리는 어릴 때부터 비교당하며 자랐다. 로즈는 다방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릴리가 되고자 했다. 그러다 릴리보다 잘하는 걸 발견했는데 그게 거식이었다. 릴리는 언제나 로즈가 남긴 음식을 먹어주었다. 그즈음부터 둘은 각자 섭식장애를 겪으며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은 섭식장애 환자를 다루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자라난 환경과 또래, 성 정체성, 사회까지 조명한다. 열세살에 황금색 핫팬츠를 입고 무대에 오르고, tv 쇼에서 커밍아웃하고, 혀 피어싱을 한 "끝내주는 금요일 밤 같은 모습"(27p)의 캣 미첼스. 그를 우상화하며 마른 몸매를 따라 하고자 한 로즈와 소녀들. 인기 있는 여학생이 되기 위해 제미마 게이츠를 따르던 소녀들. 매번 "이름+몸매와 관련된 형용사+지명=사진 설명"(545p)으로 소개되는 캣 미첼스. 데이트 폭력과 아동 학대와 방임에서 알아서 살아남은(살아남아야 하는) 여자들까지. 이게 모두 쌍둥이와 주변 여자들의 삶이다.
나 역시 이 삶과 무관하지 않다. 학창 시절에 굶어서 살을 빼고자 한 적이 있다.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가르시니아 어쩌고 하는 다이어트 보조제를 사 먹고, 가느다란 허리를 강조한 여자 연예인 몸매 사진(얼굴은 자른)을 핸드폰 잠금화면으로 설정하고, 급식은 밥 몇 숟갈에 연두부만 먹었다. 정말 몸무게 숫자만 줄이려고 했었다. 기억 안 나는 이유로 며칠 만에 그만뒀지만 이런 어리석은 짓을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섬뜩하다. sns에서 프로아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섬뜩하다.
언젠가부터 유튜브 댓글에 '개말라 인간'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더라. 어디서 파생된 단어인지 궁금해서 검색했다가 '프로아나'까지 알게 됐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머리만 복잡했다. 이미 극단으로 치달은 사람을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놓지? 워너비가 뼈말라 인간인 사람들을?
사실 지금도 인간은 타인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구원은 셀프니까. 본인이 구할 수 있는 건 본인뿐이다. 그런데 『마른 여자들』 읽으면서 생각을 고쳤다. 나락에서 직접 건져 올려 제자리로 돌려놓긴 힘들겠지만, 회복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할 순 있다고. 플리가 로즈를, 로즈가 제미마를, 다시 제미마가 로즈를 정신 차리게 한 것처럼.
그러니까 마른 여자들을 도울 수 있는 건, 본인들과 우리 여자들이라는 소리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겠지만.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니까.
+) 158p 책 페이지 위쪽 여백 오류
+) 506p 오탈자: 번갈이 → 번갈아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