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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기차 딜레마'를 알게 된 건 윤리 시간이었다. 고장 난 기차를 그대로 운행할 경우 5명이 죽고, 방향을 틀 경우 1명이 죽는데 둘 중 무얼 선택할 거냐는 질문. 이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근거로 5명을 선택하는 게 공리주의의 입장이라고 배웠다. 당시엔 이 논의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사고의 책임을 기관사에게 전가하는 느낌이었기 때문.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난 오늘, '기차 딜레마'가 떠오른 이유는 뭘까. 단순히 책 제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딜레마』는 리비아의 마흔 살 생일파티 전날부터 사흘 간 벌어진 이야기다. 근 20년 동안 집착에 가까울 만큼 준비하던 생일파티를 앞두고 리비아와 그의 남편 애덤이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한 비밀은 그들의 삶을 뒤엎어버린다. 두 사람의 세계는 박살 났고 영영 재생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했더니 서평이 너무 추상적이지만.. 어쨌든..^^
소설 속 시간 배경이 사흘인 것에 비해 독자가 체감하는 사건 진행은 몹시 느리다. 챕터가 1시간 단위로 구성된데다가 리비아와 애덤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제시되기 때문인 것 같다. 20년 가까이 지속된 결혼 생활에서 있었던 일이 1시간 단위로 휘몰아치니까.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아직 1시간 밖에 안 지났다고? 하게 됨. 그래도 감정 묘사가 꼼꼼해서 흡입력이 좋은 편.
완독하고 나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기차 딜레마'를 떠올렸는지 알겠더라. 어찌 됐든 상대방의 세계를 파괴해야 하는데 생일파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지, 생일파티 전에 폭탄선언을 할지. 감히 누가 선택할 수 있으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