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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찰나의 순간은 의외로 기억에 오래 남는다. 버스에서 읽을거리로 이 책을 챙긴 건 철저한 계획에 따른 결정이었다. 버스는시끄러우니 노래를 크게 들어야 할 테고, 그럼 글에 집중하기 어려우니 스토리 파악할 필요 없는 에세이를 챙기자. 그렇게버스 4번 타는 동안 완독한 이 책은 제법 묵직하고 맛있었다.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는 영화 28편 속 음식에 관한 작가의 기록이다. 퇴사 후 제주도에 살면서 지친 자신을 요리로 달랬다는 일화(「차가운 한 시기를 건널 때」 中)를 읽을 때 나는 어땠나. 꺼내기 귀찮아서 우산이 있는데도 보슬비를 흠뻑 맞은채 버스에 올랐고, 시간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저녁은 거른 상태였다. 책 내용과 반대로 맞물린 내 상황은 물론이고 그때듣던 노래(빈지노 - always awake), 바깥 풍경까지 자꾸만 어른거린다. 찰나가 이토록 선명할 수 있는 법이다.
영화를 얘기하는 모든 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즐겁게 읽었다. 시청각적 매체(영화)를 또 다른 시각적 매체(글)로 풀어낸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인 듯. 그리고 무엇보다 책 말미에 수록 영화 리스트가 실려있다는 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이리스트 순서대로 영화 정주행 해봐야지.
먹고 사는 일에 지칠 때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를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제목이 책의 내용과 어우러지는 느낌은 아니지만, 잘 살기 위해 잘 먹는 작가의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을 뭉근하게 데워준다. 알맞은 온도로 조리된 영화속 요리들은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이란 부제목에 머물지 않고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살기 위해 하는 거니까. 어차피 살기 위해 먹어야만 한다면, 이왕 먹는 거 맛있고 즐겁게 먹으면 더 좋지.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