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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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문체가 좋다. 한마디로 깔끔하게 잘 정돈된 글이 좋다. 뭔가 잘 꾸며진 미사여구의 글은 왠지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다양한 작가들의 특색 있는 글이 적혀있는 책들을 가볍게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비교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평가한다거나 판단한다는 것이 아니다. '비교'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도 담겨있듯이 '공통점'과 '차이점'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고찰을 하려고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특별한 문장이 아닌데도 울림을 주는 표현들이 군데군데 있었다는 것이다.

방송인이자 작가인 허지웅 님의 글은 나에게 그런 글이었다. 객관적 사실만을 말하는 데도 난데없이 감정을 동요하게 만드는. 어떤 부분에서는 심지어 울컥하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4년 만에 출간한 허지웅 작가의 신간도서, 살고 싶다는 농담.

2018년,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은 저자가 자신의 병을 이겨내면서 그때의 시각으로 쓴 진솔한 에세이다.

오늘 밤은 제발 덜 아프기를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빌며, 침대에 누우면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은 천장과 차디찬 바닥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이리도 담담히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얼만큼의 통증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글이 쓰여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이 책을 읽으면서 겸손해졌다.


차례에 적힌 짤막한 문장 몇 개만 봐도 정신이 번뜩 차려지기도 했고, 지극히 공감 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문장이 잊힐까 싶어 얼른 사진을 찍고는 핸드폰 갤러리에 넣어두기도 했다.



너무 애를 쓰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즐기면서 해야지 오래 할 수 있어요.



서른 살 이후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해 본 기억이 없다는 저자에게 우연한 기회로 요가를 시작하는데, 그의 요가 선생님이 한 말이다.


삶은 이처럼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적이 되어야 더욱 풍요로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책의 초반부에도 나와있는 글도 마찬가지다.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된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결심들을 잘 지켜내어 성과가 쌓이면 삶을 꾸려나가는 중요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

[p.24]


'된다.'라고 확신 있게 끝맺지 않고, '될 수도 있다.'라고 가능성만을 열어둔 저자의 의도는 '내 이야기를 믿을 사람만 믿어라.' 하는 식이다. 왠지 독자에게 그것에 대한 선택권을 넘겨준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고충이 느껴진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진정한 소통을 하려는 초반의 의도와는 달리, 그냥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작가의 글에 공감한다. 사소한 결심에 이은 작은 성공이 쌓이면 살면서 보이는 관점의 폭이 커진다. 내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게 한다.


예를 들면 최근에 전혀 못할 것 같았던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이젠 벽에 발을 붙이지 않고도 일자로 만들어내게 되었다는 것은 작가의 말처럼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 번도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들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삶에서의 다양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1. 내 삶의 가장 충만한 순간은?

2. 가장 비참한 순간은?

3. 가장 평화로웠던 순간은?

4. 가장 시끌벅적했던 순간은?

5. 가장 고마웠던 순간은?

6. 가장 억울했던 순간은?


이 장면들을 꼽는 일은 내 삶을 이야기로, 나를 캐릭터로 만든다. 그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지나가던 행인이 아니다.


뭔가 특별한 것 없는 시시하다고만 여겼던 평범한 삶도 하나하나 들춰보면 분명 입체감 있는, 다이내믹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흔적들을 너무도 쉽게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힘들었던, 그리고 슬펐던 기억만큼이나 좋았고 행복했던 기억들도 분명 있을 텐데 그걸 자꾸만 잊고 살았었구나 싶었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알듯이 나만의 가진 스토리를 꺼내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늘도 나는 나와 다투고, 또다시 친구가 되기를 반복한다. 지치는 노릇이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될 일이다. ··· 예민함은 더 많은 것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만 꼭 그만큼 공연한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p.118]


스스로에게 하는 말들이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다. 어쩔 땐 바보처럼 느껴지다가도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한다.


작가의 글에서 '사람 사는 건 누구나 별반 다르지 않다.'라는 깨달음과 예민함은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것이 아닌 그것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며 존중해 주는 것. 누군가의 예민함이 사실은 장점이 많은 부분이라는 것.

예전의 나는 피해의식에 며칠간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억울했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 불편한 감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는 생각은 그저 치유가 아닌 무의식 속에 그대로 바닥에 가라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생각에 또 갇혔다.


나는 운이 좋았다.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빨리 기를 수 있었다. 피해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그 기초부터 파괴한다.

[p.152]


피해의식이 생길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려야겠다.


악마의 속삭임에서 벗어나자고.


이 책에서는 유난히 '영화'와,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 그리고 '철학자'의 인용구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 허지웅이 글을 쓰면서 어떤 부분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도 '이 영화만큼은 봐야겠다'라는 글도 종종 있었고, 글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초록창을 열어 영화의 줄거리를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만큼 하나의 책에서 파생되는 '관심'가는 것들이 늘어난다. 관심사가 많다는 것은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문장을 가져와본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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