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잘했어! 기차여행
정정심 지음 / 글로벌마인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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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퇴사를 앞두고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가려고 한창 예약을 하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가기로 했던 '백두산' 은 급기야 입산이 통제되어 갈 수조차 없었고, 여행사에 치렀던 예약금을 고스란히 환불받았을 때의 허탈함은 아직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남아 있다.

그 이후로 정말 재난 영화에서 본 것처럼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거짓말처럼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약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삼 깨닫게 된다. 일상에 치여 정작 여행을 미루다 보니 어느새 내 의지와는 별개로 떠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 대학과 직장생활 모두 서울에서 다녔던 언니와 오빠를 보러 가끔 KTX를 타긴 했지만 혼자 기차여행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마음만으로는 '내일로' 기차 티켓을 끊어 며칠이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다. '혼자' 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계속 떠안고 있었던 20대의 나는, 그렇게 별 진전 없이 세월만 흐르고 어느덧 30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는 버킷리스트가 되어버린 '혼자 기차여행하기'는 수년간 나의 생각 속 바람에만 머물 뿐이었고, 우물 속에 고인 물처럼 계속 묵혀두고 있었다.



작가의 소개란에 적혀 있는 글을 보니, 잊고 있었던 '혼자 기차여행하기'라는 나의 소망에 용기라는 불씨를 지펴주는 것만 같았다.

이 책의 저자 정정심 작가는 평범한 주부이자 직장인이면서, 20대부터 품고 있던 국내 기차여행에 대한 작은 꿈을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이루었고, 그것을 이번에 책으로 펴낸 분이기도 하다.

20대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잃지 않고 켜켜이 쌓아올려 에세이로까지 출간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였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느꼈고, 다짐한 게 한 가지 있다.


나도 이런 인생 에세이를 꼭 써야지.


웬만한 자기 계발서보다 와닿는 문구가 많아 일주일도 넘게 가방에 들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던 책이다. 우연히 발견한 네이버 카페에서 생각지도 못한 보물 하나를 얻은 느낌이기도 했다.

주말에 돗자리와 치맥을 들고 가까운 공원으로 갈 때도 챙겨가서 읽어도 좋을 책이다. 작가의 글을 보면서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신선하지만 너무나 공감 가는 표현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문장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작가는 정말 확실히 다르구나. 이렇게나 공감을 확 끌어당기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서문에 담긴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는 마치 내 얘기와 같았다.



'다음에' 꼭 기차여행을 할 기회가 있으리라 여기며 생활했으나 정작 그 '다음에'라는 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떠나지 못했던 것은 가족들이 나를 붙잡아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용기가 없어서였다는 것도 깊이 깨닫게 되었다.

p.2~4



부족한 용기와 더불어,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 보니 어느새 여행은 우선순위에서 저만큼 밀려나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의 나는 돈을 얼른 모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여행은 나에게 있어 사치라는 생각도 있었다.



무엇이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선선한 바람, 맑은 공기, 푸른 하늘, 이런 소소한 행복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연을 보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것만 같다.



그렇게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도 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언제나 크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만족하면서, 가끔은 사색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좀 부려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그동안 많이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장을 다니면서 3년간 틈틈이 전국의 기차역을 방문하며 겪은 일화, 그리고 약간의 과거 고백, 생각, 감정을 담은 인생 에세이이다.

글 중간중간에 사진도 같이 담겨있어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책이다. 실제로 가고 싶은 곳을 체크하고 인터넷으로 써치하게 되는 곳도 있었다.


읽었을 때너무도 공감 가는 표현이 있어 몇 개만 적어본다.


1. 나이를 먹는다는 건 편하고 익숙한 것들에 길들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여름의 뙤약볕 같은 열정적인 삶을 꿈꾸었건만 쉰 고개를 바라보는 현재의 내 삶은 어느 무더운 날, 가방 안에 처박혀 있던 생수처럼 그저 미적지근할 뿐이다.


2. 퇴근 후, 식탁 위에 널브러진 음식물 찌꺼기에 나도 모를 짜증이 밀려와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지던 날, 나는 그 '지금'을 선택하고 무조건 여행을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3. 성당 계단을 내려오는데 또 가슴이 울컥한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내가 늙어가는 건가, 아니면 그동안 꾹 눌러 참아왔던 눈물을 이제야 쏟아내고 있는 건가.


4. 좋았던 기억도 많을 텐데 유독 아프고 상처받은 기억을 더 선명하게, 그리고 더 오랫동안 기억의 창고에 저장해두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5. 혼자서 가는 길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 되고, 친구가 되고, 은인이 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타인과 내 삶을 보다 객관적이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외로 공감 가는 표현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필사하고 싶어지는 부분도 넘쳐나서 다이어리에 깨알 글씨로 적어놓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사색하기 좋은 책이다. 가끔은 이런 책도 읽어줘야 또 힘을 내고 열심히 살아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기운도 얻게 되는 것 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속의 꿈들을 펼쳐나가는 게 더욱 어렵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이 유난히 와닿았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과는 달리, 어느 순간엔가 그저 그런 중년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 나 역시도 정신이 번뜩 차려질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일깨워준 고마운 책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글을 쓰는 '정정심 작가님'처럼 진솔하고, 마음속 따뜻한 위로를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글이 담긴 책을 꼭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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