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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윤현희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선택하게 된 책 <미술관에 간 심리학>. 화가들의 생애에 대해 다뤄진 점이 맘에 드는데 거기에 심리학까지 더해져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심리학을 배운 저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그 슬픔을 위로한 것은 다름 아닌 미술관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미술으로 심리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이 책에 소개된 모리스 위트릴로 역시 미술을 시작해서 알콜 중독을 치료했다.
저자는 각각의 주제에 맞춰 화가들을 소개하고 그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담긴 심리상태와 창작을 하게 된 심리에 대해 설명한다. 거기에 저자 자신의 경험도 살짝 녹였는데, 앞 부분에는 저자의 그림과 사진이 실려있는데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해 왜 추가했을지 의아했지만, 후반부에는 공감되는 부분도 꽤 많았고 이 책의 재미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주류 미술계로부터 인정받고 싶었으나, 냉대와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관을 굽히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던 마네. (중략) 그의 그림과 일생은 아들러가 제창한 개인심리학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다. 아들러는 모든 개인은 대중으로부터의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지만 인정을 받을 수 없을 때, 그리고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에 놓인 괴리가 커질 때 심리적 좌절과 열등감이 생겨난다고 역설했다. - p.104
마네의 그림을 보고 그저 분위기가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들러의 심리학을 접목시키니 마네의 그림은 목적 지향적이며 역동적인 인생을 살아가려 노력했던 삶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알던 그림도 새롭게 보이는 느낌이 들어 인상적이었다. 또한, 우리가 아는 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일본판화 우키요에에서 영향을 받은 자포니즘 성향을 띄고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최근 전시와 영화, 책을 통해 좋아하게 된 반고흐와 뭉크에 대한 부분은 생각보다 특별한 부분은 없어 실망하며 읽다가 마지막 5장의 여성화가의 정체성 부분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5장에서는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전문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 여성에게 강요되던 전통적 가치를 거부하며 시대를 앞서간 여인들의 용기있는 인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기가 잠든 오후의 평화로운 시간, 모리조 자매를 고민에 들게 했던 문제는 이 시대 여성이 겪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깊이 공감할 듯하다. 베르트 모리조는 여성이 독립적으로 전문성을 추구하기에는 수많은 제약이 뒤따랐던 19세기에 여성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과 화가로서의 자신의 열정을 균형 있게 이루어갔다. - p.275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싶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그게 쉽지 않게 되고 자신의 전문성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부분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화가들은 과거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적 규제와 시선에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는 점에 마음이 아팠고, 자신의 직업을 위해 비혼을 선택한 '메리 카사트'의 이야기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존재하는 일들이다.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신분을 극복하고 그림을 그린 '수잔 빌라동'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고, 그녀가 ADHD기질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웃겼다. 실제로도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이 그런 기질이 많다고 한다. 또, 도쿄에서 봤던 거대 거미 마망을 만든 '루이스 부르주아'의 생애를 읽고 그저 크고 특이한 조각이라 생각했던 마망이 루이스 부르주아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모성애에 대한 헌정의 상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화가의 삶을 들여다보니 원래 알던 작품도 새롭게 보이고 더 재밌게 다가와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