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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사람들에게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느끼기 힘든 '무탈한 오늘'. 항상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강을 잃는 등으로 항상 반복되어 오히려 지루함을 느꼈을 일상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이미 그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논하는 에세이 <무탈한 오늘>은 20대 초반 가고 싶었던 대학에 진학하여 이제야 평온한 생활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암에 걸려 힘들었던 저자의 이야기의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스무 살에 대학에 입학해 스물두 살에 퇴학당하고 스물네 살에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평온한 생활이 시작된 지 6개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술만으로 해결될 거라 생각해 3000cc에 육박하는 조직을 덜어내고 보니 다른 장기에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항암 치료를 거절하고 짧은 입원을 끝낸 뒤 학교로 돌아갔다. 한참 동안 잘 걷질 못하여서 강의실을 옮길 때마다 걷다 쉬기를 반복하였다. 감기조차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체였던 나는 몸 아픈 이들의 불편을 그때 처음 알았다. 횡단보도 초록 불이 그토록 짧은지, 버스의 계단이 그렇게 높은지, 오르막길의 작은 경사가 얼마나 막막한 것인지에 대해. - p.4~5
프롤로그를 읽을 때는 저자 본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무탈한 오늘>의 절반은 함께 살고 있는 반려동물들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대학교 전공 수업에서 토끼와 같은 실험동물이 자신과 비슷한 신세라고 느낀 이후로, 말하지 않는 존재들, 반려동물들을 많이 식구로 들여 여섯 마리의 개와 다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특히 항상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반려견을 잃었을 때 충격받았던 저자의 글이 있었는데, 반려동물은 잠시 맡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함께 해본 적이 없어서 마음 깊이 공감하기는 힘들었지만 마음이 저렸다.
건강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무탈한 오늘, 당연한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어떤 이에게는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았으며 결국 모두에게 당연하지 않아질 지점, 훗날 돌아보면 전성기였다고 기억할지도 모를 무탈한 오늘. - p.234
책의 두번째 챕터 <당신과 보낸 언젠가의, 오늘>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있고, 세번째 챕터 <싱긋 웃게 만드는 우리의, 오늘>에는 애프터문이라는 가구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가구에 대한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멋스러운 가구와 그것을 만드는 과정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두번째 챕터의 글들이 더욱 와닿았다. 그냥저냥 보내고 심심하게 여겼던 일상에 대해 나는 어떠한 가치를 주었는지 어떻게 생각해왔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가 생긴다. 다음은 읽으며 마음에 들었던 문장. 시간이 흘러 자신이 나이 먹어 가는 것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짝이는 소중한 일상들이 모여 지금의 당신이 되었다고, 시간의 흐름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20대에서 40대가 되어가는 긴 시간,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아마 나일 것이다. 그가 거울이나 유리창에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 본 시간보다 나의 눈으로 그를 본 시간이 더 많을 것이고 그를 찍은 사진과 영상들보다 나의 기억에 담긴 장면이 더 많을 것이다. 더 이상 우리가 청춘이 아니게 되었을 때, 이제는 스스로도 젊다고 생각하기 어려워졌을 때, 보기 좋다는 말이 어떻게도 어울리지 않아졌을 때 나는 그동안 기억에 담아온 그의 모습을 꺼내 빨래를 널듯 한 장 한 장 펼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반짝이던 많은 날들, 그 긴 시간의 당신을. 당신의 젊은 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노화와 닳음을 전제로 하는 시간, 이라는 것이 오래된 관계에 주는 선물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형태가 아닐까. - p.140~141 선물 같은 기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