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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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뤄진 중편소설이다. 

  작가는 중요한 정보를 가린다. 

  대화자 중 한명이 죽어가는 이유 같은 가장 중요한 정보를 끝까지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대화자는 응급실 병동에 누운 아만다와 아만다의 이야기를 듣는 소년 다비드다. 


  아만다는 며칠 전 도시에서 어린 딸 니나와 함께 시골에 여행을 왔다. 아만다는 빌린 빌라의 옆집에 사는 다비드의 엄마 카를라에게 친근함을 느끼며 친해진다. 그러다 카를라의 아들 다비드에게 벌어진 육년 전 무시무시한 사건을 알게 되면서 아만다는 위험을 감지하고 여행온지 며칠 만에 딸 니나를 데리고 시골을 바로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아만다는 바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카를라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카를라가 다니는 회사에 가는데, 그것이 치명적 실수였다. 여기서 카를라의 아들 다비드에게 일어난 무서운 일들이 아만다와 어린딸 니나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만다가 바로 떠나지 않는 이유는, 카를라와 그의 아들에게 벌어진 일의 공포에 무작정 휩싸이기 싫어서이기도 하며, 한편으로 그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자기 아이 니나를 지킬 수 있다는 엄마의 본능적 직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아이를 지키려면 무엇보다 정보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위험을 감지했다면 바로 떠나는 게 옳고, 그 뒤에 공적 수사기관에 의뢰해 이 이상한 시골을 조사해달라고 해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아만다는 시골을 떠나지 않고 카를라에게 가서 병을 얻는다. 딸 니나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벌레'가 몸 속에 들어온 것으로 상징되는 중독 상태로 빠지는 것이다. 


  어떤 오염 물질에 의해 노출이 된 이 시골 사람들은 대부분 중독 되어있고, 시골에 사는 개나 말, 오리 같은 동물들도 죽어버린다. 이 마을의 어린이들은 서로의 병을 나눠가진다는 마술적인 치료인 끔찍한 '이체'치료법을 통해 반점으로 덮인 채 살아가거나 죽는다.  



  다비드는 아만다의 기억을 수동적으로 듣는 자가 아니다. 

  아만다로 하여금, 이 오염되던 순간까지의 며칠을 기억하게 채근하는, 이야기를 받아내는 빚쟁이 같은 존재다. 아만다의 실수로 딸이 오염되도록 하게 만든 그 떠올리기 싫은 순간을 마주하게 만드는, 아만다의 고백을 듣는 역할을 한다.  


  왜 이들은 그 오염의 순간, 다비드가 말하는 '벌레가 생겼던 그 순간'을 찾아내려는 걸까. 

  다비드는 아만다로 하여금 왜 이 순간을 기억하게 하려는 건가. 

  벌레가 생긴 순간을 알아봤자 치료가 불가능한데도. 

  

  소설을 읽어가다보면 다비드가 살아있는 인물인지, 혹시 아만다가 혼자 중독돼 열에 들떠 다비드란 환영에 대고 지껄이는 건 아닌지, 아니면 이 두 사람 모두 혹시 죽은 사람들인지 여러가지 의심이 들면서 불안과 공포가 독자인 나에게 스며든다.



  이 소설의 중요 모티브는 두가지다. 

  '벌레'로 상징되는 오염의 원인과, '구조거리'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엄마가 위험에서 아이를 구해낼 수 있는 한계거리가 그것이다. 즉 벌레란 위협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한 구조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만다에게는 가장 중요했고, 아만다는 가장 중요한 구조거리를 놓쳤다. 

  

  그리고 그걸 놓친 것에 대한 자책감과 엄마로서의 아이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이 다비드와의 대화에서 반복되어 드러난다. 공포의 지점은 그런 구조거리를 매번 반복적으로 외치면서도 아이를 구하지 못했고 오히려 위험에 노출되게 한 아이러니에 있다. 카를라는 6년 전 아들 다비드가 중독되었을 때 자기 아들이 그 이후 괴물로 변했다고 아만다에게 말했었다. 


  알 수 없는 존재로서 엄마의 몸 속에 들어와 자식은 자식이 된다. 그 뒤에 그런 타자를 자기 몸으로 받아들인 엄마는 탯줄이 끊기고 아이가 세상으로 나가면 자기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아이가 세상에서 죽을까봐 불안으로 휩싸인다. 자기 몸 속에 들어온 아이는 엄마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만 또한 세상으로 나가면서 엄마와 다른 존재가 된다. 엄마들은 아이를 어떻게 느끼는가. 아이는 엄마에게 자신보다 더한 자신인가, 아니면 타자인가. 엄마는 아이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과 아이가 너무 가깝다고 느껴 좀 떨어지길 바라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진동해왔다.  


 환경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자연이 무너진 재앙 직전의 이 세계 속에서 위협을 감지했으면서도 아이를 지켜내지 못하고 자신도 죽어가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런 여자들은 아무 위험도 감지 못하거나 눈 감는 남편들과 다르며, 그 여자들은 엄마들이란 이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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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를 반납합니다 문지 푸른 문학
김혜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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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따가 된 주인공들이 교실에서 자기다움을 발견해 성장하는 이야기. 교실 속 관계는 주로 강요된 관계. 또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보이는 이야기.
빠른 호흡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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