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재규어의 보호를 받으며 '대지의 사람들'(마푸체) 중 하나인 웬출라프에게서 '충직함'이라는 뜻의 아프마우라는 이름을 얻었던 개는 '대지의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이름, '마푸체'를 뺏고, 그들의 대지를 빼앗은 윙카(백인 이방인)에게 끌려간다. 윙카는 마푸체의 이름을 뺏고 '인디오'라는 이름을 붙였고, 아프마우 대신 '카피탄'(대장)이름을 붙였지만, 아프마우는 윙카가 부르는 이름을 거부하고 그냥 '개'가 된다. 그냥 '개'가 되어 윙카의 두려움을 냄새맡으며 살던 아프마우는 윙카로부터 빼앗긴 대지를 찾기 위해 '자유롭게 날다다니는 콘도르', 아우카만과 재회하고 아프마우라는 이름을 되찾는다.  


이 책에는 마푸체어와 마푸체어에 대한 해석이 뭉게뭉게 떠돌아다닌다. 여기서 고유명은 사물을 지시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 그 사물의 의미에 접근하도록 안내하는 장치다. 그래서 이방의 언어를 풀어쓰는 방식은 독자를 이방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방의 언어의 낯선 발음이 지니는 의미를 짚어가느라 짧은 우화는 생각보다 더디게 읽힌다.


이름들을 지긋이 바라보면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이야기>는 <충직함(자신의 이름)을 지킨 아프마우(개)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충직함을 지킨 아프마우의 이야기>는 <충직함을 지킨 충직함(아프마우)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짚어 올라가면 <충직함을 지킨 충직함의 이야기>는

<충직함을 지킨 아프마우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아프마우를 지킨 충직함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말장난 같은 이것들이 제목으로 모두 그럴싸해보인다.


출발어에서 도착어로 번역한 후, 도착어를 다시 출발어 삼아 번역하면 그것의 도착어는 본래의 출발어와 동일하지 않다. 그것은 오역이나 번역능력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고정된 한 가지 의미가 선행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여러 언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여러 언어로 표현됨으로써 하나였던 의미가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은 늘 모자라거나 넘치지만 모자란 것은 모자란대로 넘치는 것은 넘치는대로 의미를 만들어낸다. 연주자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곡과 마찬가지다. 


이 책은 백인사회와 마푸체 사회, 인간과 자연이라는 공존하지만 대립하는 쌍들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지만, 말에 관한 우화다. 마푸체의 말, 윙카의 말, 개의 말, 응구네마푸의 말... 

모든 존재는 말을 한다. 그 말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닿는데 실패한다. 

듣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들었으나 내말로 번역해버리기 때문에, 번역해버린 말을 가두어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도 해석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들은 버려진다.   


충직함을 뜻하는 아프마우는 개의 이름이 되었다가, 글의 주제가 되었다가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 "나는 어느 개의 기억인 아프마우다"에 이르면

어떤 개의 기억이 된다.


아우카만이 아프마우를 부르고

그 부름에 응답하고

그렇게 되찾은 이름 아프마우는 이제 기억이 되어

대지의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내려온다.


그렇게 말과 이야기는 증식하고 힘을 얻는다. 


짧은 우화를 읽고 부록으로 달린 마푸체어 용어를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나도 그 힘에 의지해볼까 하여,

내가 소리내어 말함으로써 누군가의 말에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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