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퀴어링!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이론, 실천, 행동
미미 마리누치 지음, 권유경.김은주 옮김 / 봄알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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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속한 생물학적 범주를 밝히는 발언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발언이다. 책의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일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사회가 구성해온 어떤 범주를 선택하여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든,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가 부정하는 정체성을 창조하든 정체성은 본질적이고 고정적인 범주를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범주, 남성이라는 범주, LGBTQI 어느 하나든 L-G-B-T-Q-I--스펙트럼의 어느 범주에 걸리든 정체성은 시간성 속에서, 당사자의 의지 속에서, 범주를 형성하는 사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움직인다. 버틀러의 용어로, 정체성은 수행 중인 상태를 의미한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범주라 여겨졌던 '여성' 기반으로 정체성을 확립해왔으며, 정체성이 사회가 구성해온 범주라는 인식에 도달했으며, 결국 정체성의 범주들이 본질적이지 않으며 고정적이지 않다는 인식의 씨앗을 뿌렸고, 퀴어이론은 정체성들의 가로지르기를 통해 인식을 실현했다. 따라서 페미니즘 이론과 퀴어이론은 저자의 의도대로, 자연스럽게, 그러나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결합될 있다.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설득력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이론과 퀴어이론은 이론이자 운동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회운동의 차원에서는, 그것이 비록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순간만큼은 유일하게 영원할 같은 동질감과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어떤 정체성도 본질적이지 않으므로, 특정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체성이 마땅히 받아야 인정과 누려야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어느 순간 모순에 빠진다. 따라서 사회운동이 궁극적으로 포착해야 하는 것은 향유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인정" "권리" 아니라, 정체성의 범주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메커니즘 자체다. 책에서는 그것을 이분법적 사고로 파악한다


결국 어떤 사회운동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발생하지만, 근본적으로 정체성을 해체시켜야 한다자기가 있는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역설에 봉착한다그래서 "정체성 정치의 형태로서의 페미니즘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라는 제안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말미에 언급된 1985 가야트리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략적 본질주의는 공동의 목표와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편의와 연합전선을 위해 공개적으로는 그들 자신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일시적으로 나타내면서, 이와 동시에 진행 중이며 대중적인 의견 불일치와의 논쟁에 참여하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어떤 사회운동도 그러한 역설에 슬기롭게 답하거나, 역설을 극복하지 못했다. 페미니즘 운동이 이제 관문 앞에 서있다. 지금까지 관문 앞에 섰던 무수한 후보군들보다 가장 유력한 선수로 보인다. 책의 주장대로 페미니즘은 퀴어하므로.                            

                                    

이론이 정체성의 범주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꼬집어내는 동안, 운동 전략적 본질주의를 활용할 있다면, 그것이 "전략적" 본질주의임을 망각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뭔가 이상하고 야릇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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