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이런 논의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는다.
나아가는 각 단계의 혜택과 위험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사회 전체여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현안에전폭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오늘날 과학과 기술이 우리의 삶과 경제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정치보다 과학이 더 먼저이다. 그 순서가 바뀌면, 일이 얼마나 끔찍하게 잘못될 수 있는지를 세계는 너무 자주 보아왔다. 냉전 시대에 소련은 핵폭탄을 만들고 최초로 인간을 우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유전학과 작물 품종 개량 분야는 몹시 피해를 입었다. 이념적인 이유로 스탈린이 멘델 유전학을 거부한 돌팔이 리센코를 지지한 탓이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더 최근 들어서 우리는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이들 때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일이 늦어지는 것을 목격하고있다. 그들은 과학 지식을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부정한다. 공익에 관한 논쟁은 이념, 근거 없는 믿음, 탐욕, 정치적 극단주의가 아니라 지식, 증거, 합리적 사고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수하지 말자. 과학 자체의 가치는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세계는 과학과 과학이 제공할 수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 자의식을 지니고 창의적이고 호기심에 이끌리는 인간으로서, 우리만이 생명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세계를 바꿀 기회를 가지고 있다. 삶을 더 낫게 만를 너있는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가족과 지역 공동체뿐 아니라, 모든 미래 세대와 우리가 속한 생태계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우리 주위의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 인간에게 끝없는 경이로움을 줄 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를 지탱한다. - P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