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 평균 나이 55세, 첫 무대에 오른 늦깎이 배우들의 이야기
안은영 외 지음 / SISO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중년 그리고 50

 

앞만 보고 달려온 건 아니지만 나 역시도 비슷하게 흉내 내며 살아왔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래서 내 삶 속에 우선순위에 밀리고 평가절하되었던 나의 욕망들. 잘못된 판단과 우유부단함으로 생긴 회복되지 않는 수많은 실수들...툭 떨쳐버리지 못했던 잔상들, 그 세월 속에 생긴 생채기로 만신창이가 되버린 자존심. 때론 펑펑 울고 싶었던 상처와 울분, 제대로 기도 한번 못 펴보고 마음속 깊숙이 꼭꼭 숨어 고개 숙이고 있는 싱그럽고 수줍은 소넌의 감성...

 

이제 지천명 50(知天命)! 그리고 그 절반을 휙 하고 지나고 이제는 지천명에서조차 멀어져 이순 60(耳順)을 향해 가고 있다.

 

중년의 삶을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인생의 성숙기, 황금기(?) -청년들은 청춘이 황금기인 줄 알겠지만^^ -

 

성숙함과 안정감, 잘 익은 경험들 그리고 지혜가 담긴 삶의 볏들이 가득한 황금벌판...~

 

그 속에서 뒤늦게 깨닳은 남은 삶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초연함,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에서의 작은 해방.

 

노안이 찾아와 탁해진 시야와 반백의 은빛 머릿결은 이제 스치는 바람에도 시간의 향기를 느낀다. 중년의 삶은 완숙함이다. 중년의 매력을 뽐내지만 급하지 않게, 마음 다치지 않게, 건강하게, 즐기기를~

 

책의 말미에 쓰인 50대엔 "세상은 인생을 차분히 정리할 때라고 했지만, 우린 아직 제대로 판을 벌여보지도 못했다"라는 말에 미소가 머문다. 공감 100%!!!

 

그러고 보니 나도 아직 제대로 한번 판을 벌여보지 못한 것 같네~

 

살아오면서 자기 자신에게 격려 한번 제대로 못해줬고, 하고 싶었던 일들도 이런저런 핑계로 제대로 한번 징하게 해보지 못했어. 그저 하루하루 주변에 충실하며 가끔씩 힘겨워하는 자신을 다독이며 때론 채찍질도 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50이 훌쩍 넘은 거지 ㅋㅋㅋ 이런!!! 수고했다^^

 

가슴속 눈망울에 울음 가득 머금고 곧 터질 듯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수많은 나의 감성들을 위로하며 다독였다. 아직 울 때가 아니라고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그렇게 아닌 듯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은 듯 씩씩한 듯 상처를 숨기며 포장하며 살아왔다.

 

이 책은 50대의 감성을 자극한다. 7명의 평균 나이 55세의 중년 여성들이 늦깎이 배우로 대뷰하는 좌충우돌의 이야기. 그 과감한 도전을 하게 된 8색조들의 평범하고 친근한 인생의 이야기들이 간명하면서 맛깔나게 전개되어 있다.

 

여섯 편으로 나눠진 짧은 연극같은 이야기들을 감상하면서 삶의 고단함 속에도 새롭게 연극이라는 쉽지 않은 종목을 택한 7명의 중년 여성들에게 멋진 선택이고, 잘 해 낼 거라고~ 박수를 보낸다.

 

코로나19 시대가 끝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시간을 내서 참별난극단 B2S(Bravo 2nd Stage) 공연 티켓을 구입하여 앞자리에 앉아 직관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퇴직 후 하고싶은 일의 목록에 연극이라는 도전 목록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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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책 구석구석에서 발견한보석 같은 문장들과책 속에 숨은 책들을 소개한다.

 

인생은 아름답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중년의 삶을 사랑한다. 그 삶을 즐기자.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셰익스피어 리어왕14장 후반부 대사 21p

 

- 아들러는 인간은 성장 배경, 과거 경험, 유전 등 외적 요인으로 운명 지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할 힘을 가진 존재라고 했다. 이 창조적인 힘이 당신을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든다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28p

 

- 일본에서 40년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계로록(戒老錄)의 저자 소노 아야코는 말한다.

 

- "재미있는 인생을 보냈었으므로 나는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심리적 결재를 해둔다." 29p

 

- 크고 작은 모임이나 배움터에서 나를 소개할 때면 비행소녀라는 별칭을 썼다. 그냥 툭 입에서 타온 이름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서요. 등 뒤엔 화구를 메고 그냥 목적지가 없이 맘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오토바이가 타고 싶나 봐요" 33p

 

- 퇴직 후 맞이한 첫날 아침. 하루 24시간이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행복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피아노, 해금, 난타 등을 배웠다. 합창동아리, 독서동아리 활동에도 뛰어들어 사람들과 함께 삶을 예술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신난다'라는 게 무엇인지 온몸으로 체험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공허함과 허리 통증이 함께 밀려들었다. 41p

 

- 치매를 앓던 어머니는 나의 정성이 통했는지 모신 지 만 5년 째부터 놀랍게 회복되셨다... 빨간 머리 앤의 고백이 고스란히 나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리고 그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났다. 45p

 

- 스스로 생각이란 것을 깊게 할 수 있게 된 이후, 내 머리속에 들어온 첫 시인의 이름은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였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그 안에 담긴 짧은 시구 하나가 열다섯 살 나를 완전히 사로 잡았다. '오 계절이여, 오 성()이여,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53p

 

- 나이를 먹으며 키는 성장을 멈춰버렸는데 머릿속 생각 벌레는 쑥쑥 자라나는 것을 보니, 바람이 이뤄지기가 쉽지는 않겠다. 생각 벌레가 나쁜 생각만 잡아먹으며 제 덩치만 키운다. 좋은 생각을 늘려가도 부족할 판에 나쁜 생각만 먹고, 먹고, 또 먹어서, 뇌가 비만에 이르는 게 아닐까. 54p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줄 알았다.

설운 서른에 바라본 쉰(50)

너무 아득하여 누군가

손잡아주지 않으면 못 닿을 줄 알았다.

비틀거리며 마흔(40)까지 왔을 때도

신은 저만큼 멀었다...

- 김수열 시인의 생각을 훔치다72p

 

- 삶에 지친 어느 날 '더는 못하겠어. 항복'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고 묻는데 책 모모를 읽다가 만났던 청소부 할아버지 베포와 모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끝없이 펼쳐진 길을 매일 어떻게 쓸 수 있지요?"

"그건 아주 간단해. 발밑만 보고 비질을 하는 거지. 멀리 보면 질려서 발밑도 쓸 수 없거든. 그럴 땐 멀리 보지 말고 발밑만 보는 거야."

그날부터 나는 지금 순간만을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109p

 

-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 내가 늘 머릿속에 담아두고 후회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릴 때 나를 다독이는 용도로 쓰는 말이다. 그래, 다음이라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훨훨 날아올라야지. 115p

 

- 너무도 유명한 책 자기로부터의 혁명에 보면 '신념은 파괴자'라는 말이 나온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안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가지게 되는 게 신념이라는 것이다. 169p

 

- 빛나는 조명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지기를 기대하는 나의 입에선 대사 하나가 절로 터져 나온다. 첫 연극 공연인 '한여름 밤의 꿈'에서 내가 뱉은 첫 대사이다.

 

"우린 연극으로 꿈꾸며 살아간답니다. 우린 꿈을 꾸기에 연극을 한답니다. 우린 모두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 연극을 하죠." 185p

 

- 핸리 데이비드 소로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헛된 삶을 살았다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월든에 들어갔다고 했다. 나도 내 의도대로 살기 위해 연극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헛되어 보였다... 유명 배우들이 캐릭터에 몰입했다가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다고 한 인터뷰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겠다. 195p

 

- 수년 전 내 나이 오십에 접어들며 만난 융 심리학 입문에서 눈에 콕 박혔던 문장이 스친다. '중년기에는 외부 세계를 정복하는 데 쏟았던 에너지를 자신의 내부에 초점을 맞추도록 자극을 받으며 자신의 잠재력에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암만 그렇고말고 203p

 

- 연기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 배우수업속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타인을 연기해도 배우란 결국은 나를 보여주는 심오한 몸부림이다. 그냥 되는 대로 살아서는 배우로서 자격 미달이다." 206p

 

- 나는 연기를 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알 수 없는 이끌림과 연습 후의 상쾌함에 매료돼 빠져든다. 이를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스케이트, 기계체조, 자전거 타기, 요가, 탁구, 승마, 국선도 등 지금까지 해왔던 다양한 취미 생활이 연기를 위한 준비였던 것처럼 느껴진다. 209p

 

- 힘들고 지칠 때면 나는 언덕 위에 서 있는 '라울 따뷔랭'을 생각한다. 장 자끄 상빼의 자전거포 아저씨 라울 따뷔랭에는 자전거를 못 타는 자전거 수리 박사가 등장한다... 그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피구뉴에게 설득되어 언덕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가 사고가 난다. 그 엄청난 순간을 실수로 잡아낸 최초의 사진, 최초로 자전거를 탄 라울 따뷔랭이 신문에 실리면서 그들은 유명인사가 된다. 수십 년의 두려움을 이겨낸 자전거 박사 라울 따뷔랭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며 용기가 샘솟는다. 210p

 

- 나는 블랙스완이 되고 싶다. 나는 우리 극단이 블랙스완이길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발생 직전까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하지 않나. 하늘에 맡겨두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하지 않나. 하늘에 맡겨두고, 나는 인생 벗들 손 꼭 잡고 계속 걸어가면 될 것이다. 평소 내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가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裏覺)'이다.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218p

 

- 심장이 내게 말했다. '넌 바람으로 살고 싶다고 했잖아. 너를 만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나뭇잎처럼 움직이게 되면 좋겠다고, 냇물처럼 소리를 내게 해주면 좋겠다고. 그래, 넌 바람이야. 자유롭게 다니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소리 나게 하는 바람. 그래서 그들의 심장이 다시 뛰고 삶이 되살아나면 인생 성공이지.' 219p

 

- 겨울이면 연탄불을 갈 때마다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고 가슴 졸이던 엄마의 손가락은 마디마디 울퉁불퉁 튀어나왔고, 고운 얼굴은 비쩍 말라 코만 우뚝 솟아있었다. 김치를 담글 때면 고춧가루 묻은 손으로 나를 불러 이것저것 양념 뚜껑을 열어달라던 엄마가 그 땐 귀찮았는데, 구름 끼고 비도 내리고 밀가루를 반죽해 면을 뽑던 엄마, 칼국수를 끓여 드시며 행복해하던 엄마, 엄마가 보고픈 나머지 한동안은 나도 팥칼국수를 만들어 먹곤 했다. 227p

 

- 어느 날, 친한 친구한테서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무서웠니?"

"그때 그렇게 죽었어도 여한은 없어. 하고 싶은 건 질릴 때까지 다 해보며 살았거든, 하하하."

내 머릿속에선 번쩍 지진이 일어났다. 여한이 없다니. 그의 한마디가 내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229p

 

- 평화로운 만남과 행복을 전하는 전령사이면서 어디에서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결코 교만한 법 없이 최고의 정성과 배려로 인연을 가꾸는 사람... 세상을 살맛 나고 아름답게 만드는 널 보며 내 가슴에서 작은 열망이 움튼다... 나도 이웃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245p

 

※ 본 서평은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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