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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나의 피난처 (그래픽 노블)
엘리자베스 쉐릴 외 지음, 이스마엘 카스트로 그림, 언어의정원 옮김, 코리 텐 붐 원작, / 템북 / 2026년 2월
평점 :
코리 텐 붐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 속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다시 세워지는지를
차분하게 따라가게 되는 이야기였다.
네덜란드의 한 평범한 시계 수리공 가정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유대인들을 집 안 비밀 공간에 숨겨주면서 점점 긴장감이 더해지고, 결국 밀고로 인해 가족이 체포되면서 급격히 무너진다.
아버지는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고, 코리와 언니 벳시는 수용소로 끌려가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무너지는 시간을 지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몰래 성경을 숨기고, 함께 읽고, 사람들을 모아 작은 예배를 드리며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붙든다.
특히 벳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원망보다 사랑과 용서를 이야기하며 코리에게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 모습이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
살아있는 믿음을 목격하게 한다.
이 책은 끝까지 큰 목소리로 무엇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그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믿음은 상황이 좋을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에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 그리고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순종으로 선택해야 하는 길이라는 것.
읽는 내내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고 내가 알고 있던, 살아내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얕았는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전적인 신뢰를 하고 있었는지, 믿음을 감정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이 질문들은 책을 덮고 난 뒤에야 조금씩 더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도 이 이야기와 참 잘 어울린다.
과장되지 않은 표정과,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
그리고 어둠 속에 조용히 남겨진 인물들의 모습이
읽는 사람에게 감정을 강요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다.
특히 수용소 장면에서의 절제된 표현은
오히려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