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외계인이
웬디 오어 지음, 김난령 옮김 / 풀빛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시절 나는 외계인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왜 그리 외계인이나 미지의 생명체에 대해 집착했는지, 단순한 호기심만으로도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이라도 외계생명체로 의심이 되면 늘 꼬리에 꼬리를 물며 외계인의 실존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렸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이제는 외계인의 실체에 이해를 못 하며 이러한 이야기들 자체가 선뜻 납득하기 힘든 시기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외계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한 생명체이기도 하고(우주상에 생명체는 지구인 하나라는 편견을 깨고 우주 여러곳을 넘나드는 것 만으로도 이미 무한한 가능성을 예고 하고 있기 때문) 어찌보면 한낱 하등한 외계 생물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등장인물 지드란은 전자에 속한다. 고도의 초능력으로 상대방에게 뇌파를 쏘아 보내는 것 만으로도 모든 정보를 빠른 속도로 교환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하여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누구든 그를 지배하에 둘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기에 지드란에게 처음부터 친구란 없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해도 그것은 하등한 생명체가 주인의 말에 절대적 복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과정 중의 하나이다. 마치 우리가 키우는 애완동물처럼, 지배대상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다가도 일방통행식의 명령을 내리고, 막다른 상황에선 고압적인 어조로 명령을 내리는 막연한 지배자의 역할이다.
지드란은 앤드루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그러나 앤드루는 지드란과는 다른 꿈을 꿨다. 지드란의 초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힘이 막대해지고 모든것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 결국 쉽사리 얻은 초능력으로 지드란을 애완동물 삼아 이 세상을 정복할거라는 야망이 있었다.

서로는 서로에게 지배관계에 놓인 줄을 모르고, 자신들이 의도하는대로 서로를 조종했다. 다만 앤드루는 서로를 지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앤드루가 그런 생각까지 미치기엔 너무 어리기도 했지만 앤드루는 지드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처음엔 그냥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의 파장에 충실하고만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드란은 앤드루를 자신이 필요한 노예로 만들고자 했을 뿐이였다. 이 모든 사실이 서로에게 전제된 여행이 그다지 유쾌하다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처음엔 서로의 존재에 만족스러워 하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사이에 서로를 넘보고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모든 초능력이 어린 꼬마아이에게 한꺼번에 밀려들때, 그 벅찬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겠지만 그 초능력이 단순한 능력이 아니고, 영원한 부담감으로 다가올 거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 과정을 쉽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 같다.그러나 앤드루는 그 모든것을 초월하고 있었다.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억울한 상황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사실 처음엔 초능력을 갖게된다는 것 자체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 역시도 앤드루가 부럽기도 했고, 잘만 사용한다면 영원히 흥미의 대상이 될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배관계에 놓인 지드란의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둘의 관계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엄청난 초능력으로 가는 훈련이 한낱 외계인 지드란의 이상적인 조수가 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둘의 관계는 머지않아 깜깜한 암흑과 같아진다고 생각한다.

지드란과 수행원 카니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고등한 생명체라 굳게 믿는 지드란은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에게 각별히 신경써야 하는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엔 지드란은 앤드루의 삶을 보고 그 우주의 규칙과는 상관없이 불능상태로 아무런 가망성이 없는 친구를 지켜주는게 도리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무엇이 현명한 방법인지, 깨닫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드란은 동료 친구 따위의 것들을 가장 원시적이고 쓸모없는 개념이라 생각할 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어떤식으로든 자신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패배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그를 지금보다 더 명석하고 고등한 생명체로 만들어 줄거라 생각하며, 그것이 오히려 그가 다른 하위 생명체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누구나, 어떻게든, 무엇이든 다스릴 수 있는 것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만한 위치는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앤드루의 초능력은 그의 의식까지 송두리채 앗아갔고, 평소 생활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드란 역시도 그가 동료의 의미를 자각하지 못하는 이상 그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그들은 모든 상황을 깨닫고 나서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한편으론 서로를 아쉬워하며,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될지 몰라도 아직도 그들의 공간과 상상을 뛰어넘는 교감은 아물거리며 사라진 기억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것을 뛰어넘으려 했던 초능력은 두 사람의 욕망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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