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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기젤라 ㅣ 풀빛 그림 아이 36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7년 3월
평점 :
어릴 적 나는 기젤라만큼 버릇없는 아이였다. 기젤라처럼 큰 덩치로 친구들을 군림할 생각으로 욕심만 앞서는 나쁜 아이. 누구나 심하다 생각할 일을 저지르고 뒤늦게서야 후회할 나의 행동들.
그리고 나는 어릴 적 섣부른 판단만큼의 댓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그 때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사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인정받기 원했던 마음과 다르게 친구들은 하나 둘 외면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독재하고 싶어하는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주위에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뭔가 깨달음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발견한 책이 그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기젤라는 여왕폐하가 되기엔 지극히 어리고 부족한 소녀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왕폐하가 되었다. 세계여행을 하다가 타고가던 배가 난파되어 미어캣 섬에 표류하게 된 것이다. 미어캣보다 덩치가 큰 기젤라는 미어캣 집단에서는 적어도 자격 갖춘 여왕이 될 법 하다. 그러나 기젤라는 너그러운 여왕이 되기엔 뭔가 부족하다.
미어캣들은 기젤라를 유난히 잘 따랐다. 처음 보는 외딴 섬에 표류해 무료할 법도 한데 평생을 받들어 모실 미어캣 하인들이 있으니 기젤라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누구에게 좋으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미어캣들은 기젤라가 배고프면 밥을 차려주고 궤짝에 마른 잎을 깔아 지붕이 있는 집도 만들어 주었다. 기젤라는 밥 때가 되면 식사를 준비해 두었다가 휘파람을 불면 미어캣들이 식사를 대령하며 노크와 절로 여왕폐하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보내라는 무례한 요구까지 하는 소녀였지만 그런 건 귀여운 애교 수준이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 알아서 해 주는 미어캣을 철저히 신하로 생각했다. 외딴 섬 생활에 자신 하나만을 챙겨주는 미어캣들의 고마움은 깡그리 무시하고 섬의 여왕폐하가 되어 미어캣을 지배하겠다는 욕심만 있다.
기젤라의 황당한 요구는 끝이 없다. 화환 장식으로 구민 꽃바다에 야자수 커튼을 만든 왕좌에 앉아 화려한 대관식을 치루며 호화 찬란한 역사를 누리고 싶어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복종하는 미어캣의 줄무늬 가죽으로 만든 비키니에 탐을 냈다. 그렇게도 아끼고 따르는 신하들의 꿈을 무참하게 짓밟은 기젤라.
그리하여 무리한 요구는 선을 넘어 미어캣 백성들의 반발을 샀다. 못된 아가씨의 커다란 위압갑 때문에 미어캣의 작은 체구 안으로 감추워 둔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난 것이다. 자신이 입은 비키니가 있으면서도 줄무늬 문양이 탐난다는 이유로, 더 화려한 생활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무리한 요구는 결국 화를 불렀다.
석양이 지는 어둑어둑한 해변의 빽빽한 야자수로 가려진 그늘 아래에
하얀 모래사장과 반짝이는 조개장식이 수 놓여져 있는 그림 가운데에
지렛대에 묶인 끈 하나를 미어캣의 날카로운 이빨로 끊으면
꽃마차에서 미끄러져 장신 리본에 팔 다리가 묵인채로 대나무 굴림길로 미끄러질 운명의 기젤라!
그녀는 평생 이 해변에서 미어캣이 정성들여 차린 화려한 식탁을 받아볼 수 있을 거라고 완전히 믿어버린 것일까?
누구나 한심하게 생각할 일을 저지르고 뒤늦게서야 후회하는 행동들에 반성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모자라고 힘이 없다 해도 나의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이나 들어주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