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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문학 - 넓게 읽고 깊이 생각하기
장석주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일상은 빨래건조대에 걸린 세탁물들과 같다.
일상은 따사로운 봄날 지그시 눈을 감은 육체위로 흩날려 내리는 햇빛과 같다.
일상은 친한 친구, 연인 사이에 특별히 무언가 말할 필요 없이 교환하는 눈빛, 몸짓과도 같다.
이와 다르게 일상은 어느 순간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타인의 죽음, 관계의 파괴, 질병, 실업, 파산, 사업실패 등은 흔히 듣고 목격하게 되는 일들. 그러나 이러한 타인의 일상이 나에게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일상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실존의 깊은 어둠속으로 그리고 그 어둠은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일상의 인문학>은 저자가 일상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주제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삶을 고찰해 낸다. 그 주제들은 연속성도 없고 관련성도 없으며 말 그대로 저자의 일상일 뿐인 것이다.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생의 가치들, 또는 반(反)가치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 첫 문단에서 인문학에 대해 설명한다. ‘인문학은 라틴어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말이며 이는 사람이 알아야 할 기초 소양. 문학, 역사, 철학을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라고. 나와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는 것. 그것이 인문학이라고-
한 개인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어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일까?
이어지는 책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꼭 그런 의미의 ‘총체적’은 아닌 듯 하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주관 안에서의 관망. (관망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현대인은 너무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자신의 주변을 살피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고 여유도 없다. 현대인들의 절망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 성찰 없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일까? 책은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 이런 인간본연의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수년전만 해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들이 오고 갔다. 혹자는 인문학의 필요성,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위기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일상을 모르기 때문에 갖게 된 시각이다. 일상 안에 인문학이 있고 인생이 있다. 우리 모두는 그 일상을 가로질러 살아간다. 시간도 공간도 그 어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들도 결국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고매한 자취를 남기고 떠나간 사상가, 정치가, 작가, 철학자, 배우 등의 책들, 그들이 남긴 말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의견을, 또 인생에 대한 문제를 논한다. 지식의 습득보다는 삶의 확장을 위한 책. 저자가 언급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그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탑재돼 있다면 더 없는 즐거움 또는 비판적 시각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