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맞선 이성 - 지식인은 왜 이성이라는 무기로 싸우지 않는가
노엄 촘스키 & 장 브릭몽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권력에 맞선 이성>의 공동저자(질문자)인 장 브릭몽은 서문에서 노엄 촘스키의 대답을 인용한다.


촘스키는 첫 인터뷰에서 정치적·사회적 참여를 하는 이유와 그런 참여의 유용성을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면, 그래서 체념하고 소극적으로 처신하면 최악의 결과를 자초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면 상황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서문_5쪽


브릭몽은 이런 촘스키의 대답을 두고 ‘파스칼의 도박을 변형한 대답보다 설득력 있는 대답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참고로 파스칼의 도박은 창조자[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가 존재한다 라는 사실을 믿고 인생을 마감했을 때 死後世界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더없이 좋은 선택이요,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라고 주장한 내용임)


브릭몽이 희망을 중심으로 한 참여를 주장하는 촘스키의 대답에 찬사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가치관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겠으나 그 중심에는 ‘윤리’, ‘도덕적 미’에 대한 추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제목과 같이 권력에 대한 이성의 맞섬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촘스키가 말하는 ‘권력’은 권위주의를 통한 이익집단의 유익을 위해 ‘권위’를 남용하는 세력을 말한다. 양심 있는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그는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개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이성의 칼을 사용한다.


촘스키는 위와 같은 비판이 가능한 근거에 대해 인간 본성에는 ‘도덕적 능력’, 선악을 식별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데이비드 흄의 철학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그는 인간의 본성, 그중에서도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본성을 도덕적 판단의 중심에 놓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본성이 본능과 동의어인지 모르겠으나, 선(善)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이자 마땅히 그래야 하는 당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책의 1장에서는 이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역사적 상황들을 브릭몽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2장에서는 인간본성에 대한 1장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인간 본성과 정치에 대한 의견을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2장 초반부에 촘스키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는 점이다. 이후 브릭몽이 서문에서 소개한 촘스키의 낙관적, 희망적 참여에 대한 답이 이어진다. 책에서는 해박한 세계정치와 사상에 대한 두 사람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사상의 크기에 놀라게 됨과 동시에 의문점이 생기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책은 이어 인간 본성과 정치, 과학과 철학을 이야기 하며 현대의 해석학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촘스키는 조지프 프리스틀리의 “정신적이라 불리는 이 속성들은 뇌라는 유기적 조직의 산물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주장한 인간 본성, 사회 참여의 동기가 되는 ‘윤리’ 또는 ‘도덕적 미’에 대한 추구가 단지 뇌조직의 산물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규명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중대한 문제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과학으로도 쉽게 정의내릴 수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는 판단이 든다.


 지금까지 정신, 곧 윤리적 차원의 내용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았으나 책의 많은 부분에서 더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에 대한, 사상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있을 때 더욱 깊은 의미를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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