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재료들 - 잠시만 이곳에
오성은 지음 / 호밀밭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안녕하세요, 여러분! 예은입니다.

 

눈 깜짝할 새 이번 달이 훌쩍 지나갔네요. 5월은 휴일도 많고, 제 생일도 있어서 항상 특별하게만 생각되는 달인데요, 또 그래서 그런지 다른 달에 비해서 짧게 느껴지기도 해요. 제겐 늘 아쉬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달이랄까.

 

그런 5월에 받은 책은 제가 지난 여러 달 동안 서평을 작성하면서 꼭 한 번 받아보고 싶었던, <여행의 재료들 (잠시만 이곳에)>이라는 책입니다.

 

제가 이번 1학기에 교내에서 도서관 근로 인턴십을 하고 있는데, 책 장비 작업과 라벨링을 하면서 가장 많이 본 도서 부류가 '에세이'예요. 그것도 의도적으로 알려고 한 게 아니라, 근무 중에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거랍니다.

 

요즘 사람들은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간접적으로 그것을 접하거나, 그로부터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많이 팔리는 책이 많이 나오게 될 테니까요.

 

저도 요즘 사람들이라서 그런 건지,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게다가 이 책은 '여행 에세이'거든요. 제가 가보지 못한 곳에 다녀오고, 그곳의 흔적을 책으로 담아낸 작가를 이번 기회를 통해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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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인상 깊고, 재밌게 보았던 부분들을 하나씩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순서대로 올리긴 했지만 누락되어 있는 곳이 있을 수도 있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번 책에서는 따로 밑줄을 그어두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적어둔 글을 따라 사진 속에서 시선을 옮겨 주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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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서지는, 부서지지 않는 바위들

(1) J의 수줍은 미소는 노을이 내려앉은 마을의 길목에서 더없이 빛나 보였다.


(2)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이니셜로 표현되는 사람의 이름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아주 오래전의 연애 편지 같은 느낌이에요 :)

 

3. 멜로디는 교복을 입은 적이 없다. 스티브는?

(1) 그들의 바깥이 관객인 나라면, 나의 바깥은 그들일 테니. 대구법이 참 마음에 드는 문장입니다.


(2) The journey is the reward. - Steve Jobs (여행은 그 자체로 보상이니까. - 스티브 잡스)

 

4. 소설로의 여행, 여행으로서의 소설

(1) ... 잠시 지칠 때는 책갈피를 꺼내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책은 영화가 요구하는 시간(running time)을 강요하지 않는다. 언어는 종이와 잉크 속에 갇혀 있지만 어느 때고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나는 그러한 여행지를 창조해낸 훌륭한 작가들을 흠모한다. 그들이 직조해낸 세계 속에서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2) <런던 스케치>, <그리스인 조르바>, <이스탄불>, <설국>, <메밀꽃 필 무렵>, <무진기행>, <장석조네 사람들>, <눈보라콘>...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좋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저는 여기 적힌 작가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이 중 제가 읽은 책은 겨우 세 권, 정도지만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가 소설처럼 기억된다는 사실은 분명했거든요.

 

그리스 로마 신화로만 접해 앞으로도 가게 될 일이 있을까 싶은 크레타 섬, 아는 디자이너 선배의 그림으로만 본 가와바타 야스리의 '설국', 고등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열심히 분석만 했던 메밀꽃 필 무렵의 아스라한 밤길, 그리고 저희 집 책꽂이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무진기행 속 안개... 하나같이 각자만의 숨결과 느낌이 있어요. 다시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마법 같은 명작들.


(3) 이 여행의 마침표가 찾아올 때에는, 가난한 내 청춘의 발걸음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나는 누군가의 여행지가 되고 싶다.

 

6. 저기 저 하늘 어딘가로 불꽃이 진다, 새해가 온다

(1)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던가. 모두가 작품이고 모두가 꽃을 피우며 모두가 시간 속에 스러진다. 그래서일까, 아름답고 찬란하며, 슬프다. 새해를 맞이하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제 생각이지만 아름답고 찬란하며 슬프다는 말은 서로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표현이에요.


(2) ... 할 수만 있다면 으스러지는 저 태양을 이 잔에 담아볼 텐데. 어떻게 보낸 건지 되새기기도 전에, 한 해가 져버렸다. 다가올 해는 저 해와 다를 거야.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그런 해가 아닌, 완벽히 새로운 해 말이야. ...


(3) ... 인간은 시간의 개념을 만들어 과거와 현재를 분리했다. 이제 2015년은 작년이 되었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하늘 높이 불꽃이 터졌다.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고, 쏟아져 내리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


(4) ... 공중으로 솟아오른 폭죽은 한순간 신명 나게 터지고, 십여 초가 되지 않아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마치 씨앗이 터져 줄기가 솟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그 꽃이 소리 없이 지고 바람에 쓸려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

 

8. 마약 검사

(1) 제목과는 달리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었던 에피소드입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이곳을 손에 꼽으실 겁니다.


(2) "너는 9시 30분까지 내가 지정해주는 장소로 가서 알콜과 마약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해. 여권가 네 정신을 챙겨가도록. 행운을 빌어. 주소는……." 이 말을 읽을 때 어찌나 두근두근했던지요 ;)


(3)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에피소드 8부터 읽으시는 것도 추천 드려요!

 

12. 산의 소리

(1) ... 무슨 동물이건 그건 내가 산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고, 나는 마음을 조금 더 편히 먹기로 했다. ... 괜히 저까지 평화로워지는 기분.

 

13. 극장으로의 여행

(1) 이 에피소드에서는 제 기준으로 이 책에서 가장 사랑하는 표현이 나온답니다.


(2) 잠시 동안 불이 꺼진 그 틈, 그 어둠, 동공이 빛을 받으려 힘껏 제 몸을 열어보지만 기대와는 달리 어떤 현상도 인지할 수 없는 그러한 암흑의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 저도 이 표현을 사랑해요.

 

14. 우울 따윈 집어 치우고, 닥터

(1) "그러니, 주말에는 클럽에나 가서 여자를 꼬셔. 우울 따윈 집어치우고, 닥터." 자극적일 수 있는 말이지만 이 에피소드와 끝까지 함께 하신다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실 거예요.


(2) 소설과 음악과 함께라면 어디든 날아갈 수 있고, 펜과 기타라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던져주고 가는 설계도면을 따라서 알루미늄과 나무의 틀을 잘라내는 cutter, 그게 나의 직업이자 삶이 되었다. 굉장히 감각적인 표현이라고 느꼈던 부분. 작가 특유의 섬세함이 잘 드러나는 부분.

 

15. 파트릭 모디아노를 만나러 가는 길

(1) 제가 머물렀던 곳은 파리에서 북서쪽에 자리한 마을인, 블로뉴-비앙쿠르라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요.


(2) 작가님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일주일 동안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일주일 내내 참여해 31편의 영화를 보셨다니... 작가님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에피소드라 들고 왔어요.


(3) ... 저는 가끔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들출 때마다 그 나무를 떠올립니다. / 그리고, 제가 본 그 나무를 떠올릴 때마다 키가 큰 소설가가 느릿하게 문장을 써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어릴 때 '푸름이'라고 이름 붙여준 나무가 하나 있었어요. 무슨 생각에선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무를 꼭 안아준 날도 있더랬죠. 아직도 푸름이는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16. No More Tram의 운행을 시작합니다

(1) 사진도, 표현도 너무너무 제 마음에 쏙 들었던 부분. 단언컨대 하나의 문장도 놓치실 수 없을 거예요. 아니 놓치기 싫어지실 걸요 B-)


(2)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세고 벗겨졌다. 기타는 어제를 노래하고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그리워했다. 손은 느려지고 점점 여려지지만, 힘을 잃지 않는 2분음표가 되어 오늘을 노래하고 있다. 사진도, 글도 제 취향저격. 자연스레 상상을 하게 되는 문장들의 향연.


(3) ... 멜버른의 길거리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없이 많은 음표가 떠다닌다. 버스킹하는 사람들을 음표에 빗대다니, 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재미난 표현.


(4) ... 그들의 걸음걸이에 맞춰 멜로디만 얹으면 어느 때고 음악은 살아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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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재료들 (잠시만 이곳에)>는 제게 외국을 다녀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신선한 에세이였어요. 사진도 잘 찍으셨고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여러 문체와 표현이 제일 좋았습니다. 책 제목이 왜 <여행의 재료들>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제인 '잠시만 이곳에'가 훨씬 잘 이해됐습니다. 제목과 부제가 바꼈어도 좋았을 뻔 했어요! *_*

 

아쉬웠던 점은 사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작은 탄식과 책의 마무리가 어색했다는 점? 너무 미지근하게 끝난 것 같아요. 뭔가 속편이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작가님이 어쩌다 외국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계기가 나와있진 않았어요. 책의 에피소드 중 한 부분에 작가님의 다른 책을 참고하라는 얘기는 잠깐 언급됐었는데, 그래도 이 책만 읽은 사람들도 작가님의 여행 계기를 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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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호밀밭 출판사 SNS 서포터즈 1기 예은의 5월 서평이었습니다. 에세이라 다른 책에 비해 주관적인 평이 좀 더 많았던 글이지 않았나 싶지만, 그만큼!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의 생각도 궁금해집니다. 같이 생각을 나누어 보아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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