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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곰 ㅣ 밝은미래 그림책 57
마르크 베이르캄프 지음, 에스카 베르스테헨 그림, 이지현 옮김 / 밝은미래 / 2023년 2월
평점 :
숲 속에 피아노를 잘 치는 곰이 있었다.
모든 동물들이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끊임없이 앵콜을 외치는 걸 보니
곰은 이 숲의 인싸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런데 정작 곰은 그러한 인기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쉬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외치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얼룩말이 다가왔다.
"네 덕분에 행복했어. 이제 내가 널 행복하게 해주어도 될까?"
늘 그에게 뭔가를 바라는 동물들만 있었는데,
뭔갈 해주고 싶다고 말한 동물은, 이 얼룩말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런 얼룩말에게 곰은
자신이 정말 바랐던 것을 말해 본다.
"우리, 따로 또 같이 있을까..?"
책을 덮은 뒤에 마지막 문장을 계속 곱씹어보았다.
이건 무슨 뜻일까, 곰이 정말 바랐던 건 뭘까..?
김소원 작가님의 [적당한 거리]에
'건강한 사랑은 함께할 때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을 지키며,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을 때 성립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어떤 관계이든 '늘 함께'는 지속되기 어렵다.
'함께 있되, 혼자 있는 시간'도 분명히 필요한데, 이는 '나와의 관계' 역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으면 너도 좋을거'라고 생각하며
상대에게 자신이 좋은 것을 강요하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보통 이런 관계에서 힘 있는 아이들은 힘 없는 아이들을 자신의 페이스대로 끌고 다니는데
힘 없는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한 상태로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나 자신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적당한 여유와 여백도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상대방과, 또 나 자신과, 적당한 거리를 찾아간다.
색감도 그렇고 문장도 그렇고, 아주 어린 아이들보다는
어느 정도 또래 관계와 나와의 관계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해 본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도 좋을 것 같다.
'따로 또 같이' 있고 싶다는 이 모순적인 문장이 모순이 아님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감정임을 함께 이야기나누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