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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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의 소설은 일종의 레이어처럼 느껴진다. 이야기는 한 인물의 인생을 이루고 있는 여러 장의 층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나서 끝끝내 ‘그래, 이제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묻는다. 답을 강요하는 질문을 임현의 소설은 하지 않는다.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을 임현의 소설은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주로 타인에 의한, 혹은 운명에 의한 사건을 기술하며 시작한다. 이는 주인공인 화자가 저항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미 일어났고,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와 같은 말>의 화자는 연인 세주와의 서투르고 성급한 첫 만남을 기술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간제 중학교 교사 세주는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가진 사람이었고, 동시에 그와 세주는 낭만적인 연인처럼 보인다.


  얼마 가지 않아 임현의 레이어는 이제 그 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화자는 전 연인 연경을 비춘다. 특별한 줄 알았지만 뻔했던 관계, 한때 저주하기까지 했으나 지금은 그냥 관계없는 사람인 연경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만난 사람이었고, 수많은 사람과 함께 있었던 밀레니엄 순간의 광장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의문을 화자에게 털어놓았다. 화자는 그에 대한 화답처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민경에게 했다. 어린 시절에 키우던 개가 죽었고, 그 사체를 아버지가 하천에 던져버린, 그런 기억을. 후지고 황폐한 집, 생쥐가 우글대는 끔찍한 화장실과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이 쌓여있던 화자의 방, 그리고 아버지가 데려와 창고에서 기르던 개. 개는 심하게 추웠던 그 해 겨울을 지나지 못하고 죽었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에 사는 냄새나는 개들 무리가 무언가를 뜯어먹을 때마다 어린 화자는 신경이 쓰였다. 그런 이야기를 두 사람은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면서 나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이야기다. 소설의 시점은 그들에게 있지 않다. 애초에 연경부터가 화자의 옛 연인이고, 연경은 광장의 기억을 공유하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으며, 화자는 옛집의 흔적도 이혼한 아버지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지나가버린 유통기한 표기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주에게까지 전해진다.


  화자는 3년 만에 세주와 헤어진다. 임용고시에 실패하고 학교와의 재계약도 하지 못했다. 집과 가까운 도서실에 주말 없이 나가는 세주를 위해 화자는 밥시간마다 근처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인간극장> 비슷한 프로를 보다가 두 사람은 싸웠고, 이윽고 몇 달 뒤 헤어진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원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라면 나는 어떤 말로든 세주를 위로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떠올린 것은 겨울에 죽은 그 개뿐이었다.’ 화자의 마지막 독백은 결국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화자는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다만 개를 떠올릴 뿐이었다.


  사람들/인물들은 말/문장을 던진다. 어린 화자의 아버지가 던진 어린 개의 사체처럼. 휙휙, 툭툭. 우리는 개와 같은 말을 던지지만 동시에 개다. 우리의 말/문장은 곧 우리의 과거와 현재다. 우리는 겨울을 나지 못하고 얼어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서가 모조리 사라져 증명하지 못하는 그 개와 같은 말로 서로를 뜯어먹는다. 구체적이게 되지 못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살아간다. 특별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뻔했던, 개 같은 삶을 살 바에는 차라리 얼어 죽어버리는 게 나았는가? 아니면 죽은 개의 시체를 뜯어먹으며 계속 살아갈 것인가? 다른 선택은 우리에게 없는가?



+)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에는 위 표제작과 더불어 총 열 편이 묶였습니다. 솔직히 수록작 전부 좋았어요. 그래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일단 표제작이랑 제8회 젊은작가상 대상작 <고두>도 있고, <엿보는 손>이랑 <좋은 사람>, <말하는 사람>, <불가능한 세계> 정도를 꼽아볼 수 있겠네요. 해설도 참 좋았습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최선을 다한 해설’을 읽었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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