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와 칸타의 장 - 마트 이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5
이영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문학은 그 자체로 환상이다. 설득력을 가지는 세계,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서사. 우리가 그곳과 그들의 실재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들은 가볍게 보면 단순한 오락성의 추구이기도 하고, 깊게 보면 경험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대리 경험이기도 하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심리와 상황과 삶에 몰입하고 공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크나큰 오락이자 깨달음의 원천이다.

  <시하와 칸타의 장>에서 용 헨리가 지키는 것은 그러한 깨달음의 원천이고, 그것을 획득한 소녀 시하는 인간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그러한 인간이 만들어낸 멸망한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처해있고, 그렇기에 인류가 멸망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 시하이기에 멸망한 세계에서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아버리는 행위를, 그리고 인류를 부흥시키려는 마트 패밀리를 격렬히 증오한다. 마트퀸은 시하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그 안에 담겨있는 지혜를 가르쳐주길 원한다. 하지만 시하에게 그 지혜가 준 것이 인류에 대한 증오이고, 칸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조차 시하는 증오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대치하고 있는 간다르바, 캇파, 그리고 마트 패밀리. 이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고, 결과적으로 굉장히 아이러니한 결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인류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기고 작품은 끝이 난다. 그런 시하가 칸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의 사랑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을 때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지, 칸타가 그것을 어떻게 기록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시하는 생명의 위기에 처한 요정을 연민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척박한 세계에서 생존해나가면서도, 증오와 연민과 사랑 등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문학이라는 환상적인 보물이 준 뜻밖의 선물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