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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지면 필연적으로 더 고독해지는가? 빈궁해진 자에게는 가족조차 연락을 끊나보다. 옆집에서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의아하게 여긴 이웃의 신고로 주검은 뒤늦게 발견되고 경찰은 그제야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고 유족을 찾아 나선다. 혼자 죽은 채 방치되는 사건이 늘어나 일찍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고독사 선진국 일본. 그 나라의 행정가들은 ‘고독’이라는 감정 판단이 들어간 어휘인 ‘고독사孤獨死’ 대신 ‘고립사孤立死’라는 표현을 공식 용어로 쓴다. 죽은 이가 처한 ‘고립’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것이다.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죽은 이의 고독이 솜털만큼이라도 덜해지진 않는다. 냉정히 말해서, 죽은 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 편에서 마음의 무게와 부담감을 덜어보자는 시도이다.
나 같은 일을 하면서 유족이 시신 수습을 거부하는 상황을 보는 일은 별스럽지 않다. 진작 인연이 끊긴 가족과 생면부지의 먼 친척이 느닷없는 부음을 듣고는 "네, 제가 장례를 치르고 집을 정리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책임지겠습니다" 하고 선뜻 나서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혹시 빚을 떠안지 않을까’ 하며 빛의 속도로 재산 포기 각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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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던 202호 현관문에는 ‘전기공급 제한 예정알림’이라는 굵은 고딕체의 제목이 붙은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문구 전체가 인쇄된 다른 예고장과 달리 사인펜으로 직접 쓴 예정 일자가 눈에 띈다.


아마도 악성 체납요금 문제를 직접 처리할 담당자가 배정되고, 그가 집까지 찾아와서 딱지를 붙이고 손수 날짜를 써놓고 간 것이리라. 날짜를 보자 문득 머릿속에 무언가 희붐하게 떠올랐다. 건물관리 회사 직원이 내게 일러준 주검 수습 날짜를 놓고 셈해보니, 전기공급 중단 예정일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 겹친다. 희미했던 것이 명료해진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내 마음은 운동장만큼 거대한 응달 속으로 빠르게 접어든다. 이 비정한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삶도 끝나는 것일까? 독촉이 이어지다 마침내 전기가 끊긴 날, 그는 사람 키보다 높은 냉장고 앞에서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자동차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주차된 지역, 주거비가 비싸기로 소문난 이 동네에도 경제적인 결핍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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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음을 순수한 자살로 받아들여야 할까? 목숨을 끊은 것은 분명 자신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권유 타살은 아닐까? 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 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현자가 있어, 이 생각이 그저 가난에 눈이 먼 자의 틀에 박힌 시선에 불과하다고 깨우쳐주면 좋으련만.
생사를 놓고 고민할 만큼 인간을 궁지로 몰아붙인 지대하고 심각한 문제들. 죽은 이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머문 곳까지 찾아와 암울하고 축축한 얼룩으로 물들인 가난이나 외로움 따위는 죽음의 문을 넘는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어지고, 그 아무리 중차대한 것조차 하찮게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돼버린다면 참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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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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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만 거기에는 조금 다른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지우는 그 과정에서 겪을 실망과 모욕을 포함해 이 모든 걸 어딘가 남겨둬야겠다 생각했다. 그런 뒤 저쪽 세계에서 혼자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엄마와 용식에게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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