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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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도입 부분에 있는 낯선곳 낯선 이발소에서의 면도를 주제로 시작한다. 멕시코에서 정성스러운 면도를 받고 그 만족감에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저자의 글에서 스리랑카에서 너무나 외로워 이발소에서 무작정 들어가서 면도를 했던 나의 여행 추억이 떠오른다. 스리랑카 최고의 신혼여행지중 하나이고 아름다운 장소라 칭하는 곳이었지만 내가 도착하는 순간 비가 내리고 숙소들은 전부 풀이었고 가격은 무척이나 비쌌던 동네였다. 소나기를 피해서 챠이를 한잔 마시고 그나마 가장 번화한 버스터미널 상가 2층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도 역시 내가 갈만한 곳은 없었다. 마침 내 눈에 띤것은 이발소였다. 내가 들어서는 순간 이발사와 그 조수들은 모두 놀란 눈치였고 나는 한동안 깎지 않아서 여기저기 제각각으로 뻣쳐있는 수염을 깎아달라고 했다. 위생을 생각한다면 차마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요청한 면도였지만 이발사는 이내 면도날을 새것으로 갈고 정성스럽게 면도를 해 주었다. 우리네 동네 이발소에서 어른들 면도하는 모습과 비슷한 면도. 깔끔한 느낌을 넘어서 살깟들이 들고 일어서는 느낌었지만 뭔가 하나 남은 느낌이었다. 


여행의 추억이란 그런것이다. 어느 순간의 커다란 기억들이 부풀어 올라서 남아 있는 자잘한 기억들을 덮어버리고 그위를 지배하는 추억이라는 기억만이 존재하는 공간. 아니 그 순간을 기억하는것 자체가 아름답거나 추악하거나 힘들거나 고통스럽거나 이런 감정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이 누적되어 뒤돌아볼때쯤이면 그 순간은 거대하게 부풀어 있을것이고 그 순간에 들여보지 못하던 부분들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들은 여행의 메모라기 보다는 어느 순간 일상에서 마주칠법한 이야기들이 세계 곳곳의 여행지에서 기록되어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삶이란 여행을 하던 일상의 삶을 이어가던 여전히 존재하는것이고 어떻게 표장되는 것인지가 중요할 뿐이라는걸 이야기한다. 미움도 사랑도 그리움도 결국은 우리가 어딜가든 우리곁에 존재하지 않는가. 단지 여행을 간다는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 우리에게 날선 감정들을 들춰내고 좀 더 선명하게 느껴지게 만들수는 있어도 그 순간 지나가는 시간들은 동일한 것이다. 그 순간을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중요한 것이다. 저자처럼 길위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하나의 삶을 형성한다면 그 순간의 기록이 인생의 기록이 되지 않겠는가. 


저자의 순간 메모처럼 사진들도 여행지에서 느껴지는 관광객의 느낌이 아니라 일상속에서 어느 순간에 찍혀진 가족사진처럼 푸근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나의 감정이 그 사진위에 입혀질정도로 그들에 몰입한 것일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엽서같은 사진들이 아니라 순간의 기록으로 남은 사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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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유혹
이승휘 지음 / 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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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인간극장>에서 방영되던 아프리카 케냐에서 살던 이의 모습이 기억난다. 저자의 부인이 어린 딸과 함께 정원에서 여유롭게 놀던 모습이 기억에서 한동안 떠나질 않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월 60만원정도의 임대료를 내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영국 식민지 시절 지어진 주택에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온갖 동물들이 드나드는 정원을 가진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막연한 부러움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떤 삶의 경로를 거쳐서 케냐에 정착했는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우연히 <끌림>을 읽다가 이 책이 존재한다는걸 알았고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책의 전반부에는 한국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저자가의 모습이 등장한다. 누구나 사는 정형화된 삶이 싫어서 좀 더 자유분방한 삶이 좋아서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살던 모습. 하지만 딱히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싶던 것은 그가 아프리카로 이주한 후에 케냐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기 때문일것이다.



책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저자가 케냐에서 느끼는 삶과 그속에서 적응하기 위해서 겪어야했던 어려움등이 많이 기술되어 있다. 우리가 막연히 꿈꾸는 아프리카, 특히, 대한항공이 직항을 취항하면서 TV에 광고로 보여주는 아프리카 국립공원의 낭만적인 모습은 이상적이니 아프리카의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케냐의 모습은 그렇게 낭만적인 공간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케냐인들의 모습과 그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서 고분분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낯선 타향에서 낯선 문화를 가진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건 단순히 살아지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들과 하나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아무리 한국적 문화를 부정한다고 해도 우리 몸 어딘가에 촘촘히 박혀 있는 한국적 환경과 문화에 대한 가시를 빼내고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문화를 다시 엮어 넣어야만 하는 괴롭고 힘든 과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스스로 원하고 즐기는 일이라면 이런 일들이 조금은 덜 힘들고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될 수 있을것이다.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케냐의 어두운 이면은 케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현재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범아프리카적인 문제들이 들어난다. 서구의 제국주의 권력에 의해서 임의로 분할된 아프리카와 그로 인해서 겪게되는 내전과 부족간 갈등. 그리고 에이즈와 가난은 그들이 선택한 문화와 환경이 아닐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뛰어 넘어서 케냐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 축복이고 감동일 것이다. 이런 자연을 매일 보기 때문에 자자도 어느 순간 잊거나 혹은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항상 도시에 머물러야만 하는 우리들의 시선에는 그지 없이 부럽고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곳이다. 우리가 이방인으로써 그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주어지는 행복감이고 아름다운 시선일지 모르겠다. 저자가 느끼는 또 다른 감정은 아마 글로 다 표현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나도 언젠가는 케냐로 가서, 배낭을 맨 가난한 여행자가 아니라 좀 더 부유한 사파리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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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초상 - 떠오르는 중국을 움직이는 사람들
자젠잉 지음, 김명숙 옮김 / 돌베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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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중국 베이징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고 정착한 작가이다. 천안문 세대이기도 하면서 현대 중국을 이끌고 있는 지인들을 통해서 현재 중국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자 그들을 인터뷰하고 책을 냈다. 보편적인 생각일수도 아닐수도 있지만 분명 그들은 현대 중국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건 분명하다. 그만큼 중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일 것이다. 개방과 개혁을 통해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경제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천안문 사태의 충격은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저자가 소개하는 현중국의 인사들은 반체제 인사부터 자수성가한 사업가까지 그가 알고 있는 지인들을 통해서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 스펙트럼속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혹은 발휘했던 사람들로써 이들이 가지는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그녀의 오빠는 중국에서 공산당을 벗어나 다당제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에 당을 창당했다 투옥되었으며, 왕멍은 중국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냈으며 지금은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뒷부분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수 성가한 사업가들이다. 중국 자본주의 도입에 따른 그 수혜를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들에게서 천안문 사태는 분명한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마오의 시대의 처절했던 문화혁명은 그들 개인사에 분명한 상처를 남겼고, 이어서 발생한 천안문 사태는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마오의 시대가 끝났지만 급격한 자유,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공산주의 체제라는 극명한 한계점은 이들에게 보여주었고, 그 때문에 고무벽이라 불리는 공산주의 당 체제에 대한 저항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경제발전에 맞춘 점진적 변혁에 동조하게 된 점도 분명 존재한다.


마오의 문화혁명은 분명한 그의 광기의 산물일뿐이며 이는 많은 이들에게 상처로 남았지만 공산당은 이를 외면하고 현실에서 언급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현실이 발목잡히길 원하지 않고 있으며 급격한 만주화를 통해서 모든걸 쏟아내기 보다는 점진적인 변화속에서 서서히 도입되는 자유와 민주화를 선호하고 있고, 이런 방식은 현중국의 지식층이나 기업가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는것 같다.


하지만 중국이 거머쥔 거대한 부는 과연 부작용이 없을지는 의문이다. 시스템과 자본주의 도입에 따른 계층의 분화는 분명한 불안 요소이고 불만과 괴리감이 내재된 분열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고자하는 의미있는 시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또다른 요구의 목소리가 천안문 광장에 이어질 수 있는 여지는 분명이 존재한다. 


왕멍의 손자가 이야기하듯이 왐어의 시절에는 가지고 놀 게임기가 없어서 공산당이 됐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하고 가지고 놀 게임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꽤 의미 심장하다. 중국의 공산당 혁명은 부패한 권력과 자산층에 저항하는 농민의 반란이었다. 여기에 많은 지식층과 유산계급이 참여했었고 중국의 주권을 회복하고 자주국가 건립에 투신했다. 이는 분명한 당위성이 존재했고 그 결과가 어떻게 흘러갔던 역사적 당위성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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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봄 핵없는 세상을 위한 탈핵 만화
엠마뉘엘 르파주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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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때,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별 문제가 아니고 일본 정부의 발표를 믿고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들이 나돌았었다. 하지만 사고 진행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일본 정부 발표는 거짓말이었고 사고 대처는 방만한 수준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 후속처리는 진행형이지만 처음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큼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분명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 수준은 체르노빌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외국에서는 한국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작 한국은 조용하기만 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까 혹은 정부 발표처럼 안전하다고 믿으니까 그런것일까. 심지어 일본 여행이가 일본 음식들은 다시 성수기를 맞은것처럼 제자리를 찾아갔다. 특히, 내가 관심 있는 커피에 있어서 드립커피 용지의 대부분은 일본 수입품을 사용한다. 문제는 후쿠시마원전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드립커피 용지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게 이상했다. 단지 커피 필터를 떠나서 얼마나 많은 식품들이 한국내에서 유통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떨쳐지지 않는다. 과연 우리 정부는 이런 방사능 노출 가능성에 대해서 검사를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 만화책은 체르노빌로 떠난 예술가들의 여행일지와 같은 것이다. 그 팀의 두명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었고, 체르노빌을 보고 느낀것들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서 떠났다. 떠나기전 공포와 두려움에 싸여 여행을 망설이는 모습과 주위의 만류에서 인간적 갈등을 느낄 수 있으며, 어쩌면 성전을 위해서 떠나는 전사들의 두려움과 같은게 아닐까.

책 속에는 기괴하게 파괴되어 버리고 방치된 체르노빌의 도시가 등장한다. 구소련 정권의 최고 엘리트들이 살던 도시, 구소련의 핵에너지의 중심을 담당하고 번영의 상징이 될 수도 있었던 도시는 황폐하게 방치되고 모든 생물은 그곳을 떠나버렸다. 몰락한 소련처럼 하루 아침에 잿더미속에 공동화되어 버린 곳에서 기괴함과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작가가 머물던 곳은 도시 외곽의 금지구역에서 한참 떨어진 전원속의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자신들의 고향을 잃어버렸지만 자신들이 태어난 땅을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다. 이 주민들속에는 원전 사고와 관련된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 실제 원전 사고 수습반이었던 사람도 있고, 원전사고로 금지구역이 된 곳에서 도둑질로 먹고 사는 사람도 있으며, 원전사고 영향하에서 태어났지만 아무런 후유증도 앓지 않고 있는 축복받은 삶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재앙이었고, 결국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었기에 우리는 그 속에서 공포를 느끼고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 황폐화 시킨 자연은 스스로 복원되고 그 상처를 덮고 치료하며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이런 사실이 체르노빌의 재앙을 덮고 미화시킬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스스로 치유되고 있는 체르노빌의 모습은 인간의 부재속에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것은 이 책을 읽는 각자의 몫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원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원전의 안전성이나 위험 요소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심지어 전력이 모자라다는 이유만으로 노후 원전을 지속적으로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 건설에 대해서 논의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원전 건설과 유지보수 중에 사고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그 댓가는 원전을 가동해서 얻는 이익보다 몇배 혹은 몇십배가 될 수 있다. 지금 문제가 없다고 현실을 외면하거나 무지로 일관한다고 현실속에 존재하는 문제들이 없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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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5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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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플랜이라는 웃는 남자의 탄생은 시대의 결과물이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채 태어나서 강제된 얼굴을 가지고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진 아이. 어린 나이에 냉혹한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으면서도 죽은 여인으로부터 아기를 구한다. 자신의 생명조차 담보할 수 없는 혹독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것이다. 아이의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의 발로였을까. 그것을 알 수 없지만 위르시스는 이 두 고아를 받아 들이고 괭플랜을 웃는 남자로 길러낸다.


저자가 숭고한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인간의 존엄성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잔혹한 시대적 상황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공화정이 무너지고 다시 왕정으로 복귀한 시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인간의 열망과는 상관없이 시스템을 떠 받들고 있는 몇몇 소수의 권력층에 의해서 세상은 황폐화되고 압제된다. 이 압제에 항거할 수 있는 민중들은 어둠속에 묻혀서 신음만 할 수 있을 뿐이며, 그들의 비참함에 스스로 고개를 돌리고 만다. 이런 연민조차 받을 수 없는 가장 밑바닥에 던져진 광대, 그나마 그들에게는 떠돌 수 있는 자유만이 주어져 있다. 만일 이들이 벗어던질 수 없는 민중들 속에 있었따면 아마 그들의 고통에 살아남아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간보다 더 숭고한 늑대 오모와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곰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위르시스가 인간에게 버림받은 괭플랜을 길러내고 괭플랜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데아를 살려내고 밝은 세상에 외면 당하고 시대에 거부되어진 데아를 여신처럼 숭배한다. 어쩌면 어두운 세상에서 순간의 빛남에 현혹되어지는 것보다 마음의 눈으로 민중의 진실함을 바라볼 수 있는 데아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신에게로 이르는 길일수도 있을 것이다.


괭플랜이 민중들의 처참함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그들의 행복은 사라지고 시대가 요구하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속에 내던져지고 그 속도에 중심을 잃어버려 결국 그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세계를 이끌고 가버린다. 이 얼마나 처참한 시대인가. 인간의 기본적 삶조차 담보할 수 없는 민중의 삶에서 가장 최상층의 권력안으로 상승했지만, 결코 그들과 어울릴 수 없고 그들에게 진실된 시대의 요구를 할 수 없는 오히려 광대로서의 취급받으며 그들의 담장 밖으로 던져져 버린 인간이다. 버려진 인간 괭플랜은 타인으로부터 구원되기 보다는 스스로 구원되기를 원하며 권력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내쳐지기 보다는 세상을 벗어난 것이다. 유일한 희망은 데아이며 데아는 빛이었다. 빛은 어디서 오는가. 빛이 오는 길은 천상으로부터만이 유일하다. 빛은 결국 자신이 내려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며, 괭플랜이 빛을 찾아서 떠난 길은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데아를 찾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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