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충분한 - 인생의 오후 에세이
조희선 지음 / 홍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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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 책 재밌어?” 방문을 열고 들어온 딸이 물었다. “왜 물어봐?” 웬일로 책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가 싶어 궁금했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딱 내 스타일이야.”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했을 때 내가 보였던 반응도 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표지를 꽉 채운 푸른 나뭇잎들 그리고 잎사귀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눈에 띄었다. ‘인생의 오후 에세이’라는 띠지의 문구를 보면서 오후 햇살을 표현한 건가 생각했다. 반짝거리는 책 표면의 광택은 나뭇잎 사이의 햇살을 더 입체적으로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 새끼손톱만큼의 두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한 장씩 읽기 시작했다. 중간에 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모임에 참여하거나 약속이 있어 외출을 해야 했다. 가끔 읽다만 책을 생각했다. 뒷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31살 처음 교회에 나갔던 작가는 42살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주일학교 교사로 시작해 전도사, 목사, 교목, 캠퍼스 선교사, 편집장 등 직함은 계속 달라졌지만 작가는 한결같이 청(소)년의 곁에 머물렀다. 2년 전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추억과 남편, 두 딸, 손자들과 관련한 이야기 그리고 순탄하지 만은 않았던 삶의 여정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엄마’
5남매를 키우면서 자기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했던 엄마, 아파서도 자녀들에게 폐를 끼칠까 늘 신경 쓰던 엄마, 자식에게 언제나 지는 엄마, 자녀를 위해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엄마. 작가의 엄마와 나의 엄마는 다르다. 세대도, 살아온 배경과 성품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내 엄마의 이야기마냥 감정이입이 됐다. 이슬아, 홍승은 작가의 엄마 이야기를 통해 그가 자기 엄마를 떠올렸듯, 나 역시 그의 엄마를 통해 내 엄마를 떠올렸다. 19살에 시집와 모진 시집살이를 거치고, 20대 초반에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야 했던, 재래시장에서 하루 종일 장사하고, 억척스럽게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야 했던 어린 엄마. 엄마를 부르기만 해도 왜 이렇게 아린지 모르겠다. ‘이 정도면 충분한 엄마’에게 어떻게 하면 ‘이 정도면 충분한 아들’이 될 수 있을지, 나는 생각했다.

‘딸’
딸이 사춘기를 지날 때 우리 부부도 함께 진통을 겪었다. 나는 딸에게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고, 내 통제를 따르지 않는 것 때문에 잔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이 시기만 잘 견디면 나아질 것이라 조언해 주었다. 다행히 고등학교 진학 후 딸은 안정을 되찾았다. 딸의 태도는 달라졌지만 딸을 대하는 내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한 인격체로 대하고, 부모의 바람과 다른 선택을 내릴 때 스스로 내린 선택을 존중하고, 자기 세계를 형성해 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걸 알지만 아직도 딸에게 무례하거나 집착과 통제를 내려놓지 못할 때가 있다. 앞으로 내 아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될 때 진정한 자기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하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두 딸을 키운 작가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은 앞서가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아니다. 제 길을 가며 겪게 되는 아픔과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 책에서 만난 귀중한 아포리즘이다.

‘나’
나보다 17살가량 더 많은 작가의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가 놀랍다. 말 못할 괴로움과 어쩔 줄 모르는 어려움을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많은 청(소)년의 친구가 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18년 만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 밖 청소년들, 성관계를 맺고 임신을 걱정하는 학생, 성적 지향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못할 말 없는 친구’가 되고 싶다던 작가의 바람대로였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 편견을 깨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소리 나는 구리나 울리는 꽹과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 아내에게 사역자로서 버려야 할 태도는 못마땅함과 언짢음이 아닐까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경험과 연륜이 쌓여갈수록 선명한 기준과 높은 문턱을 지우고 부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다. 상대에 대한 열린 태도, 배려와 수용, 이해의 마음이 방바닥을 데우는 난방수처럼 내 몸 속에서 순환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픈 이들’
허리와 목의 통증과 우울증, 크고 작은 여러 차례의 수술과 시술, 졸피뎀과 아졸락을 먹으며 견뎌야 했던 무력한 시간을 지나면서도 생을 버텨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가 남은 반원의 삶을 완성해 갈 수 있도록 누군가의 밑천이 되어 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크건 작건, 테두리가 일그러졌건 그렇지 않건 원을 그려 내려는 한 사람의 삶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위기의 날들을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도움을 통해 견딜 수 있었다던 작가가 책의 말미에 던진 메시지이다. 내 곁에는 늘 아픈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가까이에 있다. 나는 겪어보지 못한 아픔과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으로 인해 힘든 날을 보내는 벗들의 밑천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진정성 있는 삶으로 답하고 싶다.

솔직한 이야기가 겉표지처럼 빛났고, 진솔한 문장들은 책의 광택만큼 눈부셨다. 최선을 다해 인생의 반원을 그려왔던 작가의 진심 때문일 것이다.
멋진 그리스도인을 만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거냐고 묻는 후배를 만난 적이 있다. 다음에 그를 만나게 된다면 조용히 이 책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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