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한나절 - 긴 숨을 달게 쉬는 시간
남영화 지음 / 남해의봄날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에서 한나절』 남영화, 남해의봄날

바다보다 산을 좋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숲의 깊은 색과 짙은 향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나무 사이로 갈라진 길을 걸으면 발바닥을 타고 땅의 신선함이 머리까지 전달되는 기분이다.
제목부터 끌리는 책을 발견하고는 냉큼 손에 쥐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 숲을 좋아한다던 내 말이 얼마나 가당치 않았는지 생각했다. 책 속에 등장한 나무와 꽃, 곤충 중 내가 아는 이름은 간신히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숲을 좋아한다 했으나 숲을 이루고 있던 꽃과 풀에 무관심했고, 숲길을 사랑한다 했으나 길옆의 나무에 대해 무지했다.
“이해하게 된다는 건 더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다.”(p.53)
“호기심이 없다면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이 숨겨 놓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게 된다.”(p.184)
듣는 마음은 호기심과 탐구심에서 나오고,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심에서 비롯되는구나.

숲 해설사인 저자는 10년간 자신이 보고 듣고 만졌던 사계절의 숲을 소개한다. 전혀 알지 못했던 숲속 꽃과 나무들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자연의 섭리와 이치가 이토록 오묘하고 신비로운 것이라니. 작가의 글에서 숲을 향한 진심이 읽혔고, 꽃과 식물에 대한 온정이 흘렀다. 자기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저 객관적 관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숲과 개인적인 교감, 친밀한 접촉을 해 온 경험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는 언어들 때문에 글에서 꿀이 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헤르만 헤세는 “나무는 내게 언제나 사무치는 설교자였다. 나무와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 나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경험한다. 나무는 교훈이나 비결을 설교하지 않는다. 삶의 가장 근원적인 법칙을 노래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자연은 좋은 설교자였고, 작가는 탁월한 청중이었다. 숲이 가르쳐 준 이야기가 작가의 삶을 통과하고 난 후 독자에게 전달될 때는 지혜와 교훈을 담은 잠언이 되었다. 숲 해설이 인생 해설로 둔갑한 셈이다.

숲에서 길어온 깨끗한 글을 마셔보자. 책의 질감을 맛보며, 눈에 글을 담아보자. 숲을 상상하며 읽다 코로나로 답답했던 가슴도 쉬어갈 수 있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