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김현진 지음 / 프시케의숲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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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김현진

머리를 식히고 싶거나, 일상이 지루하고 단조롭다고 느낄 때 에세이를 찾는다. 허구나 공상보다 일상의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에 나는 더 매료되는 편이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책인데 제목부터가 인상적이다. 재작년인가 한참 인기였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만큼이나 강렬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공교롭게 두 작가 모두 우울증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첫 장을 펼쳤다. 세다. 시작부터 자살 이야기라니. 책장을 넘기는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야기에 빠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내밀한 고백, 진실한 나눔은 물들이는 속도가 빠른 법이니까.
우울증과 함께 살아온 치열한 날들과 세일즈, 카페, IT 회사, 목장 등 일터에서 보낸 다채로운 시간 그리고 가난한 목사의 딸로 겪어 온 지난한 삶까지. 모두가 활자 안에 다 담길 수 없을 만한 묵직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일상을 헤집고 들어온 사람과 사건은 슬픈 이야기를 웃픈 이야기로 만들어 준다. 특히 직장 상사 아이의 수혈을 위해 술, 담배 안 하는 B형 남자를 찾은 이야기와 추자도의 폭풍 질주 에피소드에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의 우울과 무력은 왜 찾아오는지 작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과 무력 속에 어떻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지 책 속에서 힌트를 얻게 되었다. 베로나의 약제사, 신입직원 철수, 친가족이 아님에도 찐가족이 되어준 언니와 형부. 그리고 작가가 언급한 친절을 베푼 낯모르는 독자들. 내가 죽고 싶을 때 다정한 타인들은 살아갈 이유가 된다.
기쁨은 슬픔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웃을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유머가 튀어나오고, 고통과 좌절 속에 해학이 피어오르다니. 어쩜 삶은 이렇게 얄궂을까.

독자는 작가가 열어준 만큼 들어갈 수 있고, 보여준 만큼 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이 책은 현관, 거실만이 아닌 안방, 베란다까지 열어주고 보여준다. 다 읽고 나면 작가를 잘 알게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느끼는 게 비슷하고, 사는 모양이 거기서 거기고, 대부분 유사한 고민과 염려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고만고만한 삶을 아등바등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달까. 나는 책을 펼쳐 글을 읽었고, 글은 내게 삶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삶 안에서 나와 같은 이야기를 만난 것뿐인데도 그게 위로가 되더라.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는 낙관적인 이야기보다 절망 속에도 웃을 일은 있더라는 이야기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용기를 준다는 것을 알겠다. 농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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