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링느링 해피엔딩 - 세상에서 가장 바쁜 아빠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딸이 보낸 백만 분의 시간
볼프 퀴퍼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느링느링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소근육 미세운동 중증장애가 있는 딸과 달리던 고속도로를 벗어나 세계로 나아가는 기분은 어떨까. 이 이야기는 유엔활동에 대학교수에 환경연구가로서 바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어느 날 딸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아내와 딸과 소통 끝에 모든 커리어를 내던지고 함께 여행을 가는 내용이다. 나, 아내, 니나, 미스터 시몬. 읽으면서 니나를 위해 부모가 모든 것을 버리고 같이 떠난 것 같지만, 실상은 장애가 있는 니나와 이야기하면서 아빠가 가장 많이 깨닫고 느끼는 것 같았다.


  "아빠, 우리한테 백만 분의 시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멋진 일만 생기는 백만 분, 그치?"ㅡ14

  그러나 여행에 필요한 것은 백만 유로가 아니라 백만 분의 시간이다!......우리는 때때로 그리고 언젠가 거의 은밀하게 인생으로부터 약간의 시간을 되사기 위해, 기이하게도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 전부터 이미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인생이 곧 시간이다. 그 중에서 백만 분의 시간을 꺼내 쓰면 어떨까?......지금?ㅡ17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잖아. 그러니 모든 일이 뒤죽박죽인 게 어쩌면 당연하지."ㅡ27

  안녕하세요. 내 삶에서 백만 분의 시간을 사고 싶어요. 그럼 먼저 고객님 자신부터 사셔야 합니다. 그건 공짜예요. ㅡ107

  "물건을 사지 않고 그 돈으로 시간을 사는 거야, 어때?"ㅡ108

  절대 꿈을 이룰 수 없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이 갖춰질 '언젠가'를 기다리면 된다. 힘, 건강, 돈, 시간, 판타지. ㅡ133


  아주 멋진 일만 생기는 백만 분을 찾아서, 물건을 사지 않고 그 돈으로 시간을 사서, 있는 집과 짐을 팔고 최소의 짐과 함께 최대의 시간을 사서 가족과 함께 떠났다. 나는 과연 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날 수 있을까. 솔직히 가진 것도 없지만, 내려놓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저 가족이 함께 한 여행기라 기엔 작중 화자의 말 하나하나가 나에게 박혀왔다.

  물건대신 시간을 산다는 개념도, 여행에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고 백만분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은 놀랍게도 나의 것이고, 먼저 나를 사야 한다. 책의 내용 중에 꿈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이룰 수 없어보이는 꿈을 꾸는 딸의 모습에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도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여행은 꿈이고 꿈은 모험이고 모험은 삶이고 삶은 여행이야."ㅡ238

  함께 자기 자신을 놀리며 웃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일이다. ㅡ253

  우리는 거의 2년을 여행했다. 종이와 연필로 하는 덧셈이나 시차 등의 모든 가능한 계산 착오를 감안하더라도, 오늘이나 늦어도 내일이면 확실히 백만 분의 시간에 도달했다......백만 분은 긴 시간이다. 그러나 얼마나 긴지는 분명히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ㅡ305


프라통에서 18,000분, 야오야이섬에서 60,000분, 태국에서129,000분, 포트더글라스에서 242,000, 왈라비 크릭 페스티벌에서 630,000분.... 백만 분의 시간, 약 2년의 시간 동안 어린 소녀는 어떤 걸 배웠고, 이 아빠는 어떤 걸 느끼고 배웠을까. 이 책을 보면서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배운 것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이 배운 것도 참 많다고 생각한다.


  여행한지 1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마음껏 행복을 만끽했다. 이때 나는 이 시간들이 '그냥 그렇게' 지나가지 않으리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시간 계산을 그만두었다. 여행이란 곧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얼마나 살았는지를 계속 계산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간이 곧 삶이다. ㅡ305

  백만 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그리고 모두가 공통적으로 변했다. 우리는 '더' 가족이 되었다. 내가 그동안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의 모든 일이 지금 여기서 시작된다. 끝은 없다. ㅡ308

  "아주 간단해요. 우선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정한 다음 계속 표지판을 봐요. 표지판 뒷면이 보이면 잘못 가고 있는 거요. 당신이 어느 행성에서 왔든 상관없이."ㅡ336 


 느링느링하게 가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의사가 장애가 있는 니나를 이해해보고 싶으면 이렇게 해보라고 말한다.ㅡ "따님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으시면, 젓가락으로 신발 끈을 한 번 매보세요. 이때 손가락 관절마다 15킬로그램짜리 아령이 매달려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옆에서 빨리하라고 재촉해요!"ㅡ안 해봐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젓가락도 힘든데 신발끈에, 아령까지... 15킬로그램이면 가볍지도 않은데... 정말 최악은 옆에서 들려오는 재촉이다. 과연 느링느링 살아야만하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도 안 가지만, 일단 싫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니나도 나에게 많은 감동을 줬지만, 아무래도 화자인 아빠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다. 작은 사건이나 대화에서 인생의 어떠함을 느끼는 아빠의 모습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유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정말 좋았다. 나의 삶과 그리고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는 주 주제가 여행이기에 여행에 관련된 글들을 많이 인용했지만 하나하나 곱씹을만한 글이 많았다.
 

 

 

  책의 마지막에 사진일기같이 그들의 여행을 소소하게 적은 짧은 페이지가 있었다. 난 이 사진일기 중에 위의 사진이 가장 맘에 든다. 뭔가 자유로워보여서 그런 것 같다. 뒤에 이어지는 사진들에서 니나의 성장한 모습 전의 어린 모습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은 어떠한 속도로 나가고 있는지 아직 완주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느링느링 가다보니 오히려 더 세상이, 삶이 선명해 보인다는 말은 이해가 간다. 나는 삶이라는 여행 가운데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작가의 비유처럼 고속도로 위를 세발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문득 나도 다 정리하고 스포츠카 대신 캠핑카를 사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느리게 걷고 느리게 사는 사람이 나에게 "때론 느리게 가도 괜찮아. 주변도 좀 보고, 여유도 좀 가지고, 자유란 것도 좀 즐기면서, 어차피 가는 거 안 뛰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거였다.

  느링느링 해피엔딩을 향해서 오늘도 나의 속도대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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