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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한 인문학
이봉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5월
평점 :
음란한 인문학이라는 제목만 봤을 때, 책이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의문이들었다. 음란함과 인문학은 언뜻 보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고, 공통요소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보면서 그런 편견은 많이 사라졌다.
인문학은 시대뿐만 아니라 국가에 따라서 조금씩 의미를 달리했다. 한국의 경우 문,사,철, 즉 문학, 역사, 철학이라는 세 가지 학문으라 이해되곤 했다. 미국은 이것 외에도 예술을 인문학에 포함한다. 프랑스는 역사와 철학 이외에 사회학을, 톡일은 심리학을 포함한다. 이렇게 인문학은 광범위한 학습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이 인문학 공부가 난해하다고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란'의 사전적 의미는 '음탕하고 난잡함'이다. 유혹적이면서 부정적인 어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복잡한 단어다. 그러나 음란이라는 단어만큼 인간의 성문화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도 없다.
음란한 건 어떤 것일까? 이 책의 부제는 '금기와 억압에 도전하는 원초적 독법'이다. 음란하다는 단어가 주는 뭔가 꺼려지고 숨겨야하고 더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음란함을 금기로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많은 금기들이, 그리고 그 금기들을 이겨낸 사례들이, 그 금기들이 왜 금기가 되었는지 등등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학문에는 어떠한 성역이나 금기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인정하지만,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 인문학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음란한 인문학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음란함이란 성적인 요소이다. 성을 가지고 정치적, 예술적, 문학적으로 드러낸 사례들이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음란함들이 어떻게 사회에 드러내졌는지. 그리고 동성애나 로리타 등 아직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에 많은 논란이 되는 성적인 주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우리는 치치올리나의 행보에서 두 가지의 음란함을 엿볼 수 있다. 첫째는 '만들어진 음란함'이다. 그녀는 섹스를 직업의 도구이자 표현의 수단으로써 활용했다. 다음은 대중의 시선과 사회라는 통제망을 뚫고 드러나는 '주제적 음란함'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둘러싼 금기와 고정관념의 벽을 과감히 뛰어넘었다.

어떤 미술평론가는 피카소의 끊임없는 예술적 원천은 그를 둘러싼 여인들과의 사랑이었다고 평가한다. 피카소의 예술인생에서 사랑을 빼고는 그 무엇도 가치를 논할 수 없기에.
많은 주제들 가운데 흥미로웠던 것은 피카소였다. 피카소라는 작가가 유명한 건 누구나 안다. 그의 그림을 봤을 때 '아, 비싼 그림이구나.. 이런 그림이 왜 비싸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는 피카소의 작품을 볼때면 과연 피카소는 이런 여인들을 그림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게르니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흥미로웠다.
<<황혼유성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초라하다......상처 주는 이도, 상처 받는 이도 모두가 늙어간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과거를 후회하고, 반성하고, 아쉬워 하며서 살아온 날보다 짧은 살아갈 날들을 위태롭게 버틴다.
중년이라는 시간을 걷는 사람들. 이들은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위치에 서 있다. 그렇게 자주 멈칫하고 고민한다. 경험은 쌓이고 사유는 깊어졌지만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실패할 경우 다시 돌아갈 자리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외롭고 위태로운 사랑을 감수해야만 한다.

음란한 것은 누가 정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그런 의식때문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든지, 쓰개치마라든지, 정절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강요되었다고들 다들 생각한다. 미국의 서구적인 그런 개방적인 성의식이 부럽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미국이 청교도적 의식때문에 굉장히 금욕적이고 성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던 서구적인 성 개방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사실 우리나라가 유교주의를 절대화하고, 성에 억압적이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다. 많이 알려진대로 고려만 해도, 조선초만해도 음란함이 금기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다시 음란함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만화에서처럼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룻밤 충동적인 잠자리가 아니라 두 번째 삶을 용기 있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음란한 인문 정신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한국작가라서 참 좋았다. 서양의 많은 사례들이 나오면서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것을 한국에 적용하는 모습이 나올 때 움찔하면서 아 한국작가였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솔직히 외국작가의 좋은 책들이 많지만, 읽다보면 읽는 것을 끝나는 경우가 많고, 적용이 안 되거나 아니면 다른 문화에 이해조차 안 될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금기를 건드린 책임에도 한국작가가 썼고,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을 우리사회에 잘 적용하는 것 같아서 보면서 좋았다. 또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아직은 우리사회가 '금기'라 말하는 것들을 인문학적으로 잘 풀어낸 것 같아서 읽으면서 음란한데 학문적인 그 모습이 좋았다. 음란한 것이 마냥 더럽고 꺼려지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이렇게 풀이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