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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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파격적인 소설이다. 많은 직장인들의 꿈이자, 늘 마음 속으로 떠올랐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그 말.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자극적인 제목과 미스터리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힐링이 되는 요소들이 있어서 읽는 내내 공감과 감동과 힐링이 공존했다.

 

 

나는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되었을까. 비디오를 되감은 듯한 시간을 그저 소화해 나갈 뿐인 하루하루.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급은 제자리걸음.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직원에게는 조금의 서비스도 없으면서 서비스라는 이름의 잔업만 늘어간다. ㅡ8

그런 현실에 찌부러질 것 같다. ㅡ9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입사한 지 석 달 정도는 그런 생각만 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만둘 수 없다면 일하는 수밖에 없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ㅡ10

 


  책에서 직장인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정말 공감이 되었다. "직원에게는 조금의 서비스도 없으면서 서비스라는 이름의 잔업만 늘어간다"라는 말이 정말 공감이다. 주인공인 아요야마 다카시는 지망 회사들에 다 떨어지고, 중소기업인 인쇄물을 출판하는 회사에 취직한 직장인이다. 부장은 소리만 질러대며 사람을 무시해대는 인간이고, 존경했던 선배는 비열한 짓으로 뒤통수를 치고 일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었다. 친했던 친구의 잘나가는 모습에 질투가 나면서도 자신이 비참해지는 현실. 결국 쓸모 없는 자신에 비관하며 죽을 결심을 하는 그가 낯설지 않다.

  그의 모습은 내 모습은 나와 닮아 있었고, 내 친구와 닮아 있었고, 내 주위사람과 닮아 있었다. 어쩌면 내가 같은 회사에서 부장이 소리지를 때 옆에서 눈치 보던 사람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 되었던 내용 중 하나가 "일주일의 노래"라는 시였다. 소설 내 화자가 지었다는 이 시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인 것 같다.

 

 

 

  지금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오늘은 화요일...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시간은 멈춰 있을 뿐이다. 가장 고된 내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 한 주가 절반 이상 남았다니.. 좌절이다.


  작 중 주인공은 부장에게 깨지고 전철 타고 돌아가는 길에서 선로에 떨어질 뻔한 자신을 구한 '동창'인 '야마모토'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실제로 동창이 아니었고 뭔가 속은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그와의 관계가 너무나 편하고 좋아서 계속해서 만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기분에 '야마모토 준'을 검색하게 되고, 그가 몇 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직장 스트레스로 자살했다는 그의 사진은 자신이 만난 사람의 얼굴과 똑같다는 사실에 기겁을 하게 된다.


"너에게 직장을 그만두는 것과 죽는 것 중에 어느 쪽이 간단해?"ㅡ104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지금 유령과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일까. ㅡ129

"그래. 네 인생 절반은 너를 위해서라면, 남은 절반은 누군가를 위해있을까?"...."나머지 절반은 너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있어."ㅡ157

"괜찮아. 인생은 말이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ㅡ171

내 인생에 참견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뿐이다. ㅡ196


  직장을 그만 두는 것과 죽는 것 중 어느 것이 간단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 두는 것이라 답하겠지만, 직장인들은 의외로 죽는 걸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어쩌면 그만 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전하는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괜찮아. 인생은 말이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가 아닐까 싶다. 살아만 있다면.... 나는 한때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있다'는 건 어떤 의미 일까?


"패배자, 패배자. 대체 뭐에 졌다는 거지. 인생의 승패는 남이 결정하는 건가요? 인생은 승패로 나누는 건가요? 그럼 어디부터 승리고 어디부터 패배인데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나는 이 회사에 있어도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둡니다. 단지 그뿐이에요."ㅡ197

"간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간단하면 안 되죠. 저는 이 회사를 너무 간단히 골랐어요. 시간이 걸리는 게 무서웠고, 날 받아주는 회사라면 어디든 좋았어요. 하지만 직장을 그런 마음으로 결정하면 안 되는 것이었어요. 다음에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거예요.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요. 사회적 지위 따위 없어도 돼요. 설령 백수로 살더라도 마지막에 내 인생 후회하지 않을 만한 길을 찾아내겠어요. ㅡ198

"하지만 이런 나라도 한 가지만은 바꿀 수 있어요. 바로 내 인생입니다."ㅡ199

여기에 있는 사람들 역시 모두 저마다 무거운 생각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인생과 관계없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조금쯤 상냥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ㅡ207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내 눈에 띈 사람만이라도 어떻게든 구하고 싶다. ㅡ215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 인생은 바꿀 수 있고, 내 주위 사람을 구할 수는 있다는 말이 인상 깊다. 우리는 패배자 또는 루저라는 말을 가끔 쓴다. 화자의 말에 위로가 받는 나는 인생의 패배자인 걸까? 이 책을 보면서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렇구나. 아, 직장인들의 비애는 어느 세상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안 오르고, 상사의 고함 소리나 들으며, 직장 상사의 눈치나 보는.."미생"들. 이 책에도 한 사람의 미생이 있었다.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이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나는 때려치지 못하지만...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책. 인생의 힘든 순간에 가족들이, 주위 사람들이 힘이 될 수있음을 보여주는 책.

  삶을 포기하는 영혼들에게 "인생이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라며 교훈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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