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러브 메이 페일을 읽기 전에 책 소개에 있던  “사랑은 실패할지 몰라도, 인생은 실패할 리 없어. 내가 너를, 나를 네가 구해줄 테니까.”라는 문장이 가슴이 와 닿았다. 이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는 실패한 몇 사람들이 나온다. 결혼 생활에 실패한 포샤, 교사 생활에 실패한 선생님, 버리는 것에 실패한 엄마, 사는 걸 실패한 친구까지... 많은 실패한 사람들이 나오지만, 이 책은 결코 어둡다고만은 할 수 없다. 책 내내 유쾌한 분위기가 맴돌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도 변할 수 있다.
나도 항상 되고 싶었던 그런 여자가 될 수 있다.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ㅡ15


왜 오늘 밤 탈출했냐고? 어느 날 썩은 나뭇가지가 쿵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데 무슨 이유가 있나?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여자들에게도. 그리고 나는 용감하게 취했다. ㅡ40


 섹스 중독증에 걸린 포르노 영화감독인 남편이 십대의 소녀와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한 포샤 케인은 남편의 거시기를 갈기고(?) 그 길로 남편의 집을 나와 고향으로 돌아 온다. 잘 버는 남편 덕에 가난한 생활은 벗어났지만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에,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변화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집착을 가진 엄마의 집으로 돌아 오게 된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무서워 하고, 무언가를 버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하는 그녀의 엄마이지만,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다이어트 콜라를 사다 놓는 모습에 엄마는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흠, 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중에서 고통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아무 일도 안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오래전에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말이야. 그 말이 맞았어."ㅡ41


나는 엄마의 인생이 내 인생보다 더 엉망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 했다. ㅡ70
 
나는 엄마가 이 세상에 내 놓은 단 하나의 작품이었다. 불쌍한 엄마. 엄마가 지금까지 살면서 존재론적인 위기를 겪지 않은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ㅡ73


그런 식의 끝도 없는 집착과 광기 때문에 엄마는 자신만의 모험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자신을 둘러싼 쓰레기 더미 외에 인생의다른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ㅡ74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무 조건 없이 날 사랑해주는 사람인 엄마, 그건 아마도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엄만 정말 날 사랑한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고한 사실이다. ㅡ78


포샤 케인 박물관은 좀 인상 깊었다. 아기 때부터의 그녀의 모든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란... 뭔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엄마 같았다. 비우는 삶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 한다. 버리는 것이 깔끔하고 좋은 면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모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역시 선생님과 고향에 돌아오자 만난 친구 였다. 미혼모의 몸으로 아들을 키우는, 처음에는 밝아 보였지만 그녀의 안에도 실패는 있었고 어둠이 존재했다. 포샤와 칙이 만나게 해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자 이야기만 들어도 '나도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멋진 선생님이었지만,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고 온몸의 뼈가 부스러져 교직에서 물러나 쩔뚝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버논 선생님. 사건이 있은 후 암울한 숲에서 '카뮈'라 이름 붙인 강아지 한 마리와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너희 중 많은 학생이 남의 의견에 따라가는 사람이 될 거라고 나는 알고 있다. 테스트란 말에 몸을 사리는 무리 속의 사람들. 무슨 말을 하거나 뭔가를 하기 전에 다른 사람 눈치부터 보는 사람들이지. 하지만 너희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다. 아직 시간이 있어, 얘들아, 자유로워 질 시간. 파블로프에게 너희는 개가 아니라고 말할 시간이 있다고. 자유로워지고 싶니? 그러니?"-106


대신 나는 너희들에게 모험을 권할거야. 길모퉁이를 돌아가면 뭐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니? 한 가지는 약속하마. 지루하진 않을 거야. ㅡ107


이건 운명이다.
필연이 계속되는 망할 놈의 그리스 희극 같은 것.
난 지금 그 운명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ㅡ155


알베르 카뮈와 내가 보내는 하루의 최고이자 최악인 점은 우리에게 시간이 무한히 많다는 것이다. 시간이 무한히 많다는 건 이론적으로는 좋게 들릴지 몰라도, 실제로는 거시기를 세게 차이는 것과 같을 수 있다. ㅡ166


버논 선생님과 카뮈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죽음에 대한 미화였다. 버논 선생님은 죽음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고, 카뮈와 같이 자살하기로 하지만 카뮈는 낙사로 마치 자살처럼 죽게 된다. 자살한 작가 카뮈의 이름을 개에게 붙이고, 죽음과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은 버논 선생님이 문학을 사랑하는 걸 넘어서 조금 미쳐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하긴 믿던 학생에게 온 몸이 바스러지도록 맞고 교직에서 나오게 된 선생이 긍정적일 수 있겠냐마는 말이다.

 

 이 소설에는 많은 우연적인 요소들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수녀가 버논 선생님의 엄마라던가, 기르던 강아지가 자살하고 자신도 자살하기 위해 시도하던 그 때 포샤가 나타난다든지..하는 많은 우연적인 요소들이 글을 조금은 신빙성이 떨어지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매우 잘 읽혔고, 재미있었다.

 글 전반을 한 화자가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 포샤/버논/매브수녀/척 이 네 인물이 각 장을 맡아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도 새로웠다. 각기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로 인해 글이 끊긴다기 보다는 독자가 서로의 연관성과 글의 이어짐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각각의 이야기가 다 읽고 나면 하나로 연결 된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빌어먹을, 그녀는 너무나 희망에 차 있었기 때문에 나는 죽고 싶었다. ㅡ257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과거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꿈을 포기했던 바로 그 순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어. 이건 마치 누군가가 우리 부엌에서 소금을 한 줌씩 훔쳐가는 것과 같아. 몇 달 동안은 눈치도 못 채다가, 어느 날 소금이 줄어든 걸 봤을 때도 여전히 소금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어느 순간 앗, 소금이 바닥난 거야."ㅡ383
 

나는 이 책이 실패에 대해 말할 뿐 아니라 다시 딛고 일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고, 죽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여전히 살아있음으로 인해 변할 수 있고, 좌절한 그 가운데 늘 빛은 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한 번도 좌절하지 않은 인간이 인간일까? 나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금수저도 크든 작든 한 번 이상은 실패할 것이다. '넘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넘어진 게, 그 상처가, 그 좌절이 힘들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일어날 수 없을 때,  내밀어진 손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넘어졌을 때 날 잡아 줬던 손에게 이제는 내가 손을 내밀 수 있음을 보여준 책이다. 나도 내게 내밀어졌던 손들에 내밀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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