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나서영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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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하얀 배경에 나무 하나.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라는 제목과 "잊지 않았다고 해도 너는 어쩔 수 없이 지나가버린 시간. 그러나 아직 그곳에 그대로 남았구나."라는 글. 화자는 누구에게 행복하라고 말하는 걸까하는 궁금증을 안고 책을 폈다.
주인공은 작가였고, 소설가였다. 홍대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소설을 쓰는, 글쟁이. 흥미로운 건 화자와 작가의 이름이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작가에게 어느날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날라온다.

"상식적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잖아! 소설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냐는 말이야. 또 소설을 읽고 죽겠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야?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소설도 사람을 죽일 만큼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아." -38
 
당신의 소설로 인해 죽겠다는 내용의 편지. 편지는 이 소설의 큰 흐름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의식의 흐름"이다. 이 책에선 재밌는 <장치> 몇 개가 보인다. 작가와 화자의 이름이 같고 똑같이 소설가라, 둘이 동일인물이며 작가가 겪은 일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게 한다. 두 번째 장치는 소설 속의 소설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또 다른 소설을 쓰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세 번째 장치는 의식의 흐름이다. 소설 속에 <의식의 흐름>이란 소설이 등장할 뿐 아니라,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라 소설이 진행된다.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소설을 만났다.
 
"아무리 듣는 사람이 당사자를 모른다고 소설에 써버리면 어떡해. 나라면 상처를 받을 거야. 어쩌면 믿음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77
더 이상 허무맹랑한 주장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불길한 편지를 보낸 익명의 누군가는 내 삶이 얼마나 절박하고 비루한지 모른다. 가진 전부를 털어 작업실을 만들고 남은 전부를 걸어 소설을 쓰는 암담함을 모른다. 내게는 죽겠다는 편지 따위에 휘둘릴 시간도 여유도 없다. 죽겠다면 잘 죽으세요, 한마디가 할 수 있는 전부. 나는 소설을 쓸 것이고 써야만 한다. 내게는 소설밖에 남지 않았다. 소설밖에. 그러나, 편지는 손에 쥐어진다. -79-80
 
이 글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함에도 경계를 긋고 있다는 것이다. 화자와 작가의 이름과 직업이 같고, 실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화자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도 써지고, 내용이 흘러간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작가는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라고 한다.
 
외면은 도박과도 같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원하는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님, 소설에서 죽음이 얼마나 쉽습니까. 끝은 결국 죽음이 아닙니까? 기쁨도 슬픔도 절대 끝이 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죽음만이 끝이 될 수 있습니다. 무척 사랑스럽고 소중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런 인물의 죽음이라야 비로소 소설에 중요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면 작가님은 망설임없이 소설 위해 죽으라고 목을 조르거나 도끼로 내려치실 게 분명합니다. ...죽음은 마침표와 같습니다.-82
 
어떤 소설이 삶과 비교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떤 이야기와 인물이 우리들의 삶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설사 흉내를 냈더라도 그 무게와 가치는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삶을 얼마나 담을 수 있을까요. 아주 긴 소설이라도 삶의 아주 짧은 순간만을, 그것도 띄엄띄엄 담을 수 있습니다. 소설은 찰나마저도 온전히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작은 조각조차 붙들 수 없습니다. 소설은 많은 이야기를 겉에 드러내고 질문을 던지지만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이야기는 수수께끼처럼 감춰버립니다. 아니,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85-6
 
이 책에서 85쪽과 86쪽으로 이어지는 이 인용구가 가장 맘에 든다. 나도 책을 참 좋아하고, 글도 가끔 쓰는 사람이지만.. 쓰면 쓸수록 현실을 느낀다. 책 속엔 많은 공상들이 있지만, 결론은 현실만이 내게 남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삶을 얼마나 담을 수 있을까요.... 이 말이 작가가 몇 년간 글을 쓰면서 느낀 체험담일 것이라 난 생각한다.
 
두려움, 보라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두렵다. 그 낯선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다. 그때 보라는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이건 비밀인데요, 비밀이라는 말 뒤에 웃음소리만 귀를 간질인다. 여전히 손은 오그라든 채 펴지지 않는다. (이건 비밀인데요,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은 누가 쓴 걸까요? 보라일까요? 아니면 서영일까요? 방금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150-1
 
85-85쪽의 인용이 가장 맘에 든다면 150쪽부터151쪽의 인용구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믿을 수 없는 화자의 등장이랄까? 까도까도 참 재밌는 소설이다.
 
상처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마련한 그곳에 여전히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내게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말라고 한다면, 그래서 당신의 상처가 아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소설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제게는 소설보다도 당신이 소중합니다. 당신이 상처를 받지 않고 더는 죽겠다는 결심을 버릴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 있습니다. 오직 당신에게만 이 소설을 읽도록 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많은 상처가 담겨 있습니다. 저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278-8
 
이 소설의 화자와 모든 등장인물은 마치 동일인물 같다. 서영이가 보라같고, 그들이 깐난이 같고, 그들이 난쟁이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진작가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느낀 점은 이 책은 참 어려우면서도 참 쉽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참 흥미롭고 매력적인 소설을 만난 것 같다. 작가가 쓰면서 독자가 자신이 숨겨 놓은 것을 얼마나 발견할 것인지 설렜을 것 같다.
 
익명의 누군가와 내게 진실하고 싶다. 더 이상 소설을 쓰는 것처럼 알량하게 삶을 대할 수 없다. 삶, 결코 속일 수 없는 진실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스스로를 속이고 속이는 그 악순환에서 벗어난다면 부끄러움은 조금이라도 덜어질까, 묻지만 답을 알 수 없다. 답을 알기 위해서라도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 비록 감당하기가 버겁더라도 견뎌야 한다. 다시금 스스로를 속임으로 진실을 잃어서는 안 된다.-288
 
행복만이 이 창문을 지날 수 있기를. -354
너는 소중한 사람, 나를 사랑한 다른 깐난이고 난쟁이며 내가 사랑한 또 다른 깐난이고 난쟁이다.-355
 
이 책의 결론은 제목과 같다.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기에... 동일인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동화랄까? 유대감이랄까....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모를 흐름 가운데 바라는 소원은 한 가지이다.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책의 막바지 부분에 화자의 전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부분이 참 인상 깊었다. 성공해서 찾아가겠다는 화자에게 불행하면 찾아오라는...
이 소설에서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인지 아닌지도, 화자와 작가가 동일인물인지도
깐난이가 누구고 난쟁이가 누구인지도, 그 둘이 동일인물인지도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어떤 울림이 있다는 거.
세상에 가끔은 명확하지 않아도 그저....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라는 한 마디가 맴도는 멋진 기분.
오늘 하루 명확한 건 없었지만, 그저 말해보고 싶다.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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