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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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읽기 전부터, 워낙 유명해서 많이 들었던 책이다. 너무 유명해서 대략적인 주제도 알 정도였다. 그래서 보기 전부터 이 유명한 책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글을 시작하기 전, 옮긴이의 말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중 일부인 '앵무새'는 우리가 아는 앵무새와는 좀 다른 종이라는 것이다. 왜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일까 궁금했었는데, 의문이 좀 풀린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너 타협이란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아빠가 물으셨습니다.
"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 말이에요?"
"아니, 서로 양보해 합의에 이르는 것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 네가 학교에 가기로 양보한다면, 우리는 전처럼 늘 매일 밤마다 계속 글을 읽을 거야. 그러면 되는 거지?"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어린 여자 아이인 스카웃의 시점에서 모든 이야기가 전개 된다. 변호사인 아빠와 오빠인 젬, 방학마다 놀러오는 딜,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켈퍼니아, 이웃의 무서운 이야기가 있는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인 부 래들리 아저씨, 옆집의 모디 아줌마, 고모, 학교, 친구들 등등.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등등의 차이가 아이의 눈을 통해 자극적이지 않게 필터링 되어서 전해 온다.

 

 

이 사진은 아마 이 책에서 무척 유명한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몸이 아닌 머리로 싸워라. 나는 이 쪽보다 이 다음 쪽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수백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고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이번인 사정이 다르단다. 이번에는 우리가 북부 사람들과 싸우는 게 아니고 우리 친구들과 싸우는 거야. 하지만 이걸 꼭 기억하거라. 그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친구들이고 이곳은 여전히 우리 고향이라는 걸 말이야."


동양인으로서 흑인 열등이나 백인 우월에 대한 감각은 거의 없어서 엄청난 공감은 되지 않지만, 전에 보았던 노예 12년이나 버틀리 같은 영화들이 많이 생각 났다. 수백년 간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고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다는 그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이 말은 흑인들의 투쟁사를 한 마디로 정리한 것 같았다. 전에 버틀리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는데, 백악관의 흑인 집사를 뜻하는 말이다. 많은 대통령을 모신 이 버틀리의 삶의 순간순간이 흑인의 투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백인을 모시는 일을 하던 버틀리 할아버지가 결국 흑인 해방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어떠한 감격이 있었던지!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을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난 이 문장들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왜 책의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가 되었는지 말해주는 구절들이랄까? 어치새를 쏘는 건 허용이 되지만, 앵무새를 쏘는 건 죄가 된다. 이 대비는 흑인 톰과 백인 유얼 아저씨의 대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줘야 해."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누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불린다고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욕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보여 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그러니까 듀보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실망할 필요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 일만으로도 고통이 많으시단다."


"그래, 훌륭하신 귀부인이셨어. 할머니는 세상일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계셨지.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아들아, 네가 그 때 만약 이성을 잃지 않았어도 난 너에게 할머니께 책을 읽어 드리도록 시켰을 거다. 네가 할머니에 대해 뭔가 배우기를 원했거든.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가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이 책은 '스카웃'의 생각으로 필터링 된 '아빠'의 이야기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아빠는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정의롭고, 지식인이며, 과하거나 치우침이 없음에도 인간적인 따스함이 있고, 남을 동정할 줄 아는 동시에, 인간적인 아픔도 겪는. 멋지면서 다분히 인간적인.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내가 볼 때 다분히 영웅상인 것 같다. 아빠의 말들은 멋있다. 또 양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또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한다.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할 필요는 없지. 그건 숙녀답지 못한 거고..... 둘째로,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올바른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어. 그들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


"하지만 젬, 너도 나이를 먹으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다. 폭도들도 결국 사람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들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한 명의 인간이야. 남부의 작은 읍내마다 폭도들은 하나같이 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 별것 아니란 말이야."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오빠가 대꾸했습니다.
"그래서 여덟 살짜리 꼬마가 그들에게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들었던 거냐?"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어, 들짐승 같은 패거리들도 인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걸. 흠, 어쩌면 우리에겐 어린이 경찰대가 필요한지도 모르지. 어젯밤 너희들은 비록 잠깐이지만 월터 커닝햄 아저씨를 아빠의 입장에 서게 만들었던 거야. 그걸로 충분하단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은 재판 전에 흑인 톰을 죽이러 온 폭도들을 어린 소녀 스카웃이 돌려 보낸 그 장면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지만, 유얼은 성악설, 커닝행은 성선설의 대표가 아닐까? 어쩌면 성무선악설일지도 모른다. 어쨋거나 폭도도 똑같은 인간이며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 하퍼리도 그런 것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고 더 아이러니 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러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너희들은 낯가죽이 두껍지 않아. 그래서 구역질이 나는 거지?"

"아직 저 아이의 심장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그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어. 전에도 그랬고, 오늘 밤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다시 그럴 거야. 그럴 때면 오직 애들만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구나. 그럼 잘 자거라."


하퍼 리는 아이의 순순함이 어른의 더러움을 덮거나 혹은 어른은 볼 수 없는 자신들의 더러움을 보는 눈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의 전반에 걸쳐 아이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영악함이 나오다가도 그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순수함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단순함이 아쉽기도 했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 없어"
"그렇게 말하기는 쉽죠. 기독교를 믿는 어떤 판사들, 어떤 변호사들도 이교도적인 배심원들을 꺾을 순 없어요. 제가 자라는 대로-" 오빠가 나지막히 중얼거렸습니다,
'그게 바로 네가 네 아빠의 뒤를 이어 해야 할 일이야." 모디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크면 어릿광대가 될 거야." 딜이 말했습니다.
오빠랑 나는 발걸음을 갑자기 멈췄습니다.
"그래, 맞아. 광대가 되는 거야. 웃는 것 말고는 사람들에 대해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을 거야. 그래서 서커스단에 들어가 허파가 터지도록 실컷 웃을 거야."딜이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마침내 오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네 나이 때는 말이야.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 있다면, 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지? 스카웃, 이제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부 래들리가 지금까지 내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말이야, 아저씨가 집 안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이야."


이 책은 스카웃과 젬이라는 두 남매를 통해 발현된 깨어있는 어른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정의로웠던 어린이 젬이 과연 커서는 어떻게 되었을지.... 새삼 하퍼리의 후속작 파수꾼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이 책은 흑인 차별에 대한 글로 유명하지만, 난 솔직히 여성 차별에 대한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여성은 배심원이 될 수 없고, 여성은 수다쟁이고, 여성은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사치만 부리고, 여성은 남자를 유혹하고..... 난 작가가 흑인과 백인의 차별에는 분노했지만,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당연시 넘어가는 모습이 불편했다. 또 여성 차별적 언사가 나올 때마다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스카웃, 결국 우리가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멋지단다."


그러나 뭐 결론은 언제나 이런 것이다. 좌절을 겪은 멋진 아빠의 가슴은 너덜해졌고, 어린 젬과 스카웃과 딜의 가슴에는 상처가 생겼다. 너무 갑자기 그러나 사건은 어느 정도 종결 된 채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책에는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결국 세 사람의 죽음으로 끝이난다. 듀보스 할머니의 죽음, 톰의 죽음, 그리고 유얼의 죽음. 세 죽음이 아빠와 젬과 스카웃과 딜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다음 이야기인 '파수꾼'을 보면 알 수 있을까?


다음 읽을 책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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