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딸에게 주는 레시피' 이 책은 받았을 때부터 기대가 되었다. 공지영이라는 대작가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설레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공지영작가가 딸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레시피이다.
 
-많은 고양이 털의 개수보다 많은, 그런 날을 살아왔던 엄마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거야.
-하지만 명심해라. 우리가 회피하고, 무시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바로 그것이 실은 우리가 진정 풀어야 할 숙제이고 넘어야 할 언덕이며 결국은 우리를 진정으로 성장시켜주는 열쇠임을 말이야.

 

인생의 선배로서, 엄마로서 공지영은 색다른 모습이었다. 작가인 공지영만 알던 나에겐 '엄마'로서의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정말 사적인 '여자'로서의 공지영, '엄마'로서의 공지영. 엄마로서의 그녀는 뭔가 낯설었지만, 인간적이었고 포근했다.


힘든 날, 자존감이 떨어지는 날.... 엄마는 딸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며, 레시피 하나 하나를 추천한다. "엄마는 이랬단다, 너는 어떠니? 이런 날, 이런 요리는 어떠니?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우리 모두 다 그래. 이런 요리 하나 먹으며 네 자신을, 네 인생을 요리해 보자." 하는 것 같다.

-명심해라. 이제 너도 어른이라는 것을.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윽 음식이든.

-너는 네 인생의 주인이야. 길거리에 서서 네 인생을 구경하면 누가 너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을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러니 힘을 내자.

-그래, 우리가 성장했다는 표시 중 하나가 바로 그거야, '그래서'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엄마가 말하지만 어떤 일에든 하지 못할 이유는 9999가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이지. "하면 되니까".

-엄마가 늘 말하지만 너는 네가 버는 돈보다, 네가 겨우 얻은 커리어보다 중요하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이야. 너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가끔은 네 자존심을 완전히 버릴 만큼 중요하단다.

-언제나 자신을 잘 살피고 물어서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네 영혼이 원하는 것을 살펴라. 그것을 선택할 때 너는 그것을 잘할 수 있어. 그리고 행복할 거야.


딸에게 남기는 레시피는 하나의 편지였고, 인생을 먼저 산 자의 충고였고, 딸의 인생에 대한 관심과 격려였고, 또 그녀의 자화상이었다. 한 챕터 당 하나의 요리 있고,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고, 하나의 충고와 격려가 있었다.



 

 

-위녕, 비록 네가 앉은 자리가 딱딱하고 너의 옷이 낡고 네가 사는 집이 남루하더라도 올리브 열매같은 아름다운 결실이 거기서 나올 거라 믿자.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오늘 하루는 네 꿈의 한자락이 되겠지.  

-네가 우울해하는 데는 수만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딱 한 가지야. 우선 몸을 움직이고 맛있는 것을 먹고(네 몸에 좋은 것, 살도 안 찌는 것 말이야) 따뜻하게 너를 감싸는 것. 그리고 좋은 말씀을 읽거나 듣고 밝은 생각을 하는 것.

-삶은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오늘이 그날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 그걸 잊지 마라.

-아름다운 나의 딸, 그래 하루씩 사는 거야. 오직 오늘이 있을 뿐이야. 그게 인생의 전부이다. 엄마를 만나러 오는 버스 안에서 네가 보는 풍경이 온통 봄빛이라면 네 인생은 전부 봄인 거야.

-한 사람도 고통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통이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 인생에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 이미지, 그 표상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지도 몰라.

-내가 그런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면 남에게 그런 사람이라도 되어주자. 설사 현실은 늘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쫓기고 쫓겨 우리가 누구인지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채로 흘러가버린다 해도, 인생의 어느 한 시기, 이런 꿈을 꾸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조금은 서글프지 않을까.

-언제나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힘들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힘들고, 잘 사는 것만큼 잘 죽기가 힘든 것이다. 그러나 비워야 잘 내려오고, 잘 죽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우리의 누추한 삶은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단다.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충고와 위로와 격려 속에는 그녀의 인생이 그대로 녹아 있어, 정말 공지영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해 주는 이야기 같았다. '네 몸음 챙겨라', '오늘을 살되 최선을 다해서', '너만 그런 건 아니다', '누구나 외롭다', '항상 감사하자' 등등 나도 만약 딸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다.

 

-삶은 자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네가 그렇게 살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 작은 실수들, 많은 실패들, 끝나지 않은 시련들은 너를 성숙하게 만들려는 신의 섭리로 생각해보렴. 오늘은 혼자서 따뜻한 된장차를 마시며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자.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성공한 날이고, 이보다 더한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인생은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어렵고, '잘' 올라가기보다 '잘' 내려오기가 어렵고, 욕심은 끝도 없고, 오늘도 애쓰지만 여전히 실패하고, 여전히 힘든 매일...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라면 덜 아플까? 이 글을 보고 나는 된장차의 맛이 궁금해졌다.

책의 내용 하나 하나가 공감가고, '내' 엄마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내가 딸을 낳으면,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요리 레시피는 조금 바뀔 수 있겠지만, '누군가의 엄마'가 '어딘가의 자식'에게 진솔하게 그리고 애정어리게 가리쳐 주는 인생 레시피 한 권 인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요리 될 지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서야 알게 되겠지만, 요리의 완성도 만큼이나 중요한 건 요리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적어 놓은 레시피이다. 이 길은 절대 지름길이 없다. 살아가다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할지 의문과 막막함과 좌절이 있을 때 펴 볼 수 있는 인생 레시피 하나쯤 내 책장에 꽂혀 있어도 좋겠다 싶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공지영의 어떠함을 봤다. 나는 소설가 공지영보다 엄마 공지영이 더 좋다. 인간적인 그녀의 여자로서의, 엄마로서의 이야기에 나도 한 번 그녀가 추천한 레시피를 따라 요리 하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봐야 겠다.


-인생을 행복하게만 살다 간 사람은 없어. 다만 덜 행복하게 더 행복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 있단다. 어떤 것을 택할지는 네 몫이야. 그러니 눈을 크게 뜨고 이 순간을 깨어 있어라. 네 고민이 깊어지면 고민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그 고민이 가리키는 바를 바라보아라. 깊은 고민은 네가 무엇에 얽매여 있는지를 말해줄거야. 거꾸로 거기서부터 매듭을 푸는 것도 인생의 한 지혜야.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서로 좋은 하루를 맞자. 멀리서 서로 그리워하는 것도 이런 초여름 밤에는 감미롭겠구나. 그래그래 오늘도 그렇게 좋은.

그래 오늘도 그렇게 좋은, 그런 하루가 모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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