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ㅣ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두행숙 옮김 / 걷는나무 / 2013년 11월
평점 :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처음엔 제목에 끌렸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니... 아무리 강심장인 사람이어도, 철갑으로 둘러쌓인 사람이여도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칼보다 무서운 게 펜이고, 모든 흉기보다 무서운 게 말이란 흉기다. 이 흉기는 의도치 않아도 남을 찌르게 되고 또 내가 찔리기도 한다.
삶은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똑같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어떤 사람은 상처를 입고 어떤 사람은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 차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부당한 대접이나 모욕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를 견뎌냈느냐다"라는 세네카의 말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처가 인생을 마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 삶에 놓인 가시덤불을 깨끗이 걷어 낼 방법은 없다. 한 가지 희망은 그 모든 나쁜 경우에도 선택이 여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애를 써도 우리 인생에서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가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이다.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을 나와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상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상처받았다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상처 주는 행위를 했다'가 아니라, 그 행위 때문에 '나의 가지가 땅에 떨어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누가 봐도 상처 주는 말이지만 나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이 마음의 상처로 남느냐 아니냐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황에서 처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 받은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 느낌'을 상처로 남길 수도 있고 상대의 문제로 되돌려 줄 수도 있다.
여기서 상처 입는다고 하는 단어는 육체적인 상처가 아닌 심리적인 상처이다. 우리는 살면서 상처가 되는 상황들과 말들을 무수히 겪는다. 그러나 누구는 상처 받고 누구는 상처 받지 않는다. 저자는 중요한 것이 상처 입는 말을 들었느냐 또는 겪었느냐가 아닌 견뎌냈느냐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처받기를 거절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처 입은 사람들이 종종 잊는 것이 하나 있다. 파괴적인 분노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몸이 느끼는 통증을 잠재울 약을 찾아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기 전에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라.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결과니까.
무조건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행동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 생각하며, '나의 문제'와 '너의 문제'를 분리해 보라. 무조건 내 탓도 무조건 남 탓도 하지 않을 때 상처의 악순환을 멈추게 된다.
우리는 상처 받으면 복수하고 싶어한다. 내가 겪은 고통을 남도 똑같이 겪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저자는 복수 또한 자신을 상처입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에게 복수 하고픈 마음이 없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적을 용서하라고 한다. 모든 일에는 객관화가 필요한 것 같다. 나의 잘못, 상대의 잘못. 객관화는 싶지 않지만,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보다 유익한 게 없다.

모든 일을 나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이들이 있다. 보통 상처는 남에게서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상처는 본인이 주는 것이다. 상대방은 나에게도 또 다른 이에게도 같은 말을 하지만, 누구는 상처 받고 누구는 상처를 받지 않으니 말이다. 상처를 허락하지 않음.... 나도 노력해 봐야겠다.

'나의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아픔을 주었을까.'
상처 입은 곳을 찾아가 보라는 저자의 말.... 마지막 질문은 나의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아픔을 주었을까이다.. 상처의 뫼비우스 띠. 상처는 상처를 부르고, 더 큰 상처를 가져온다. 이 띠를 과감히 자를 수 있는 이는 용서 할 수 있는 사람 뿐이지 않을까? 올해의 다짐에 '남을 용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를 추가해야 겠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자기만의 잣대를 버려둔 채 타인 혹은 사회에서 제시하는 모범을 무작정 좇을 때가 많다.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불완전함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존재의 일부일 뿐이다.
편견으로 인한 상처는 절대 저절로 아물지 않는다. 쌓이고 쌓여 결국 폭발하고 만다. 더 위험한 것은 마치 사회적 규칙이나 문화처럼 인식되어 쉽게 바꿀 수 없고 상처 또한 대물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편견을 사라지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가는 일, 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라.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세계에서 헛된 경쟁을 하며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편견에 갇혀 자기가 정해놓은 안전한 영역에셔, 검증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나 흥미진진한 것들로 가득하다.
편견에 대한 저자의 말이 아프다. 편견을 사라지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많은 편견이 있다. 그리고 그 편견으로 인한 차별이 있고, 또 상처가 있다. 이 편견이 준 상처는 심지어 치유도 어렵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 세상을 봄으로 이 편견을 깨트릴 수는 있다. 편견을 깨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사고의 틀이라는 게 생각보다 견고하다. 나도 많은 때 깨려고 하지만... 박혀있는 편견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상처줬는지... 책을 읽으며 반성이 되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똑같은 걸 느끼고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사람을 내 옆에 두고 마음대로 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처음 유배되 상처는 그에게 받은 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 상처를 키우고 곪게 한 건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그가 땅에 묻힌다 해도 사라지지 않을, 오직 나만 해결할 수 있는 슬픔이었던 것이다.
용서는 상처를 잊어버리거나 타협하는 것과는 다르다. 상처를 준 사람들의 잘못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쌓인 원망과 분노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의 분노가 다시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을 없애는 것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나를 고통스럽고 아프게만 할 뿐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것이다.
사랑..... 아름답고 좋은 단어인 이 사랑은 때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무서운 흉기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고, 또 상처입는지. 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상처 준 적도 또 상처 입은 적도 있다. 김광석님의 노래도 있지 않은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상대를 구속하는 것이, 아프게 하는 것이, 상처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나보다 더 나이를 먹은 분이 보기에 난 아직 핏덩이일지도 모른다. 나도 나보다 어린 이들을 보면 그렇게 느낄 때가 있기에.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남자든, 여자든... 우리 모두는 상처를 받고 산다. 넘어지는 것이, 상처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상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에 집중한다면, 이 상처는 언젠가 훈장이 되고, 다시 넘어지지 않게 하는 교훈이 되지 않을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오늘도 흔들리고 있지만, 한 걸음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