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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한 그림자의 춤"
캐나다의 대표작가이며, 단편작가들 중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작가.
그 작가의 정수가 이 소설에 있다고 했다.
총 15편의 소설이 수록된 행복한 그림자의 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라는 소설도 가장 마지막에 실려있다.
나는 15편의 소설 중 가장 처음에 나온 작업실이라는 소설이 제일 좋았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하는 주부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을 얻으면서 일어난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이상한 주인을 만난 이야기라고나 할까?
이 소설부터 시작해서... 이 책은 마치 우리의 일상집 같다.
내 이야기 같고, 쟤 이야기 같고, 얘 이야기 같은.
그러나 한 편으로는 뭔가 음울하기도 하고.
해학적이고 비판적이기도 하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다.
미이라는 작별 인사를 했던가? 하지 않은 것 같다. 높다란 병상에 앉아 너무나 큰 환자복 위로 섬약한 갈색 목을 꼿꼿이 세우고 배반에는 면역이 된 듯 나무로 깎은 듯한 얼굴을 들고, 미이라는 이미 자신이 받은 선물도 다 잊은 채 학교 뒤쪽 베란다에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외따로 떨어져 전설처럼 입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비의 나날
나는 우리가 차에 타고 있던 아까 그 오후의 마지막 순간부터 거꾸로 흐르면서, 어리둥절하고 낯설게 변한, 아버지의 삶을 더듬는다. 마치 마술을 부리는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친근하고 평범하고 익숙하다가도 돌아서면 어느새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운, 끝끝내 알 길 없이 바뀌어버리는 풍경 같은 그 삶을.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
단편 소설들을 하나 하나 읽어나가면서, 작가의 문체가 참 맘에 들었다.
묘사력이 참 뛰어난 것 같다.
사람 한 명, 마당 있는 집, 어떤 상황 하나조차 어떻게 이리 멋지게 묘사할 수 있는지!
보면서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특히 처음과 끝은 정말 좋았다.
"...내가 볼 적에는 사람이 떠나는 것도 머무는 것도 다 그럴만 하니께 그러는 거여.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구먼. 여기가 바뀌는 것도 괜찮아. 달걀을 더 많이 팔 수 있으니 좋겠지......"-휘황찬란한 집
거실에서 오갔던 말들은 이미 바람에 날려 갔다고 메리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의 계획도 잊히고 단 한 가지만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그들은 승자이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자식들을 위해 집을 마련하려 하고, 어려울 때면 서로 돕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꾀한다. 마치 그 지역사회 안에서 아주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현대식 마술을 찾았으니 한 치의 실수도 없을 것처럼 운운하면서.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정나미 떨어진 마음을 억누르는 수밖에.-휘황찬란한 집
그 뿐 아니라 작가는 사회의 쓸쓸함을 담고 있었다.
비정한 그러나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그런 시선들이 소설 곳곳에 박혀있다.
초반에 이해가 안 가는 내용도, 나중에 가면 정말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상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자신의 상상 속에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뭔가 씁쓸과 슬픔의 미소가 뒤따른다.
그것이 바로 트리스테(쓸쓸함)이다, 트리스테 에스트.(쓸쓸해지는 것이다.)
그 무모한 여정. 처음이라서였을까?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올라서였을까? 아니다. 그건 로이스 때문이었다. 사랑을 할 때 어떤 사람은 조금만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꽤 멀리까지 가서 신비주의자처럼 아주 많은 것을 내던지기도 한다. 그 사랑의 신비주의자, 로이스가 이제는 꼬깃꼬깃 구겨지고 추운 모습으로 완전히 자기 안에 갖힌 사람처럼 자동차 좌석 한쪽 끝에 앉아 있었다. -태워줘서 고마워
그러나 붉은 벽돌집이 늘어선 무더운 거리를 빠져나오고 시내를 벗어나 마살레스 선생님과, 이제 두 번 다시 못할, 앞으로 영영 못할 게 거의 확실한 선생님의 파티를 뒤로하고 집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우리는 도대체 왜 딱한 마살레스 선생님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분명코 하고도 남을 이 상황에. 그건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우리를 방해하기 때문이고 그 음악은 선생님이 사는 저쪽 나라에서 보낸 코뮈니케이기 때문이다.-행복한 그림자의 춤
전반적으로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작가의 문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그리 묘사를 잘하는지 감탄이 나왔다.
나중에 배껴쓰기 공부를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