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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암에 걸린 친구를 구하기 위한 순례' 이 모티브를 알자 나는 이 책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다.
내가 해럴드 프라이와 비슷한 입장이라 여겨졌다.
나도, 내 친구도 해럴드나 퀴니처럼 나이가 많진 않지만,
내 친구는 갑상선 암에 걸렸고
나는 '암'이란 녀석이 우리 사이에 낀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랜 시간 그녀에 대해 무관심 했음을.... 반성했다.
해럴드는 평생 처음 우체통이 예상보다 빨리 머리를 쑥 내미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 해럴드는 맞닥뜨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길을 건너려고 했으나, 우체통은 이미 포스브리지 로 모퉁이에 우뚝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뭔가를 시작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끝낼 수는 없었다.
위대한 것, 놀라운 것.... 이런 것은 모두 미약한 시작에서 비롯된다.
퀴니에게 답장을 보내기 위해 우체통을 찾아 나선 길에서 긴 여행의 길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해럴드이지만, 나는 모린도 이 책의 중요한 주인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모린은 해럴드의 아내이다.
해럴드는 모린에게, 모린은 해럴드에게...
둘 사이의 벽은 높고 상처는 깊었다.
이 여행은, 이 순례는 어쩌면 둘 사이의 벽을 허물고 고름을 짜내고..치료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약이니 뭐니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믿어야 돼요. 인간의 마음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주 많아요. 하지만, 있잖아요, 믿음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출발한다고요. 내가 걷는 동안은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고. 이번에는 내가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전해주세요."
처음엔 동네 우체국, 그 다음에는 좀 더 먼 우체국...
우체통을 찾아다던 해럴드는 주유소에서 알바하는 소녀의 믿음에 결국 퀴니를 찾아가기로 맘을 먹는다.
해럴드가 중간에 말을 끊었기 때문에, 마치 자기 자신을 찾으러 나갔다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여행에서 가장 계획이 엉성한 부분은 바로 여행 자체였다. 그는 걷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걸을 것임을 알았다. 섬세하게 조율된 요소 같은 것들은 둘째 문제였다. 계획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는 데번의 도로는 잘 알았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서는 그냥 북쪽을 향해서 갈 생각이었다.
뒤에 백랍같은 바다가 있었고, 앞은 모두 버윅에 이르는 땅이었다. 어쩌면 다시 바다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출발했다. 출발을 하니 이미 끝이 보였다.
왜 이런 걸 기억해야 하는 거지? 그는 어깨를 웅크리고 발을 더 강하게 내디뎠다. 퀴니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것 처럼.
이 책의 글 중에 의미심장한 말들이 있다. 자기 자신을 찾으러 갔다오고,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이 이야기는 처음에는 남으로 시작해서,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모린에게서 멀어지고, 자신의 죽은 아들에게서 멀어지고...
처음에는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고 책이 끝나고 남은 것은 찾음과 만남이다.
이 여행이 어떻게 시작했든 그는 자신을 찾고, 아내를 찾고, 죽은 아들을 찾았다.
"우리 길이 다시 교차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렇게 만나서 기쁘구려. 이야기를 나누어서 기뻐요." 그들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는 이제 사람들이 작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마음 가득 경이감과 더불어 따뜻함을 느꼈다. 또 외로움도. 세상은 한 발 앞에 다음 발을 내딛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인생이 평범해 보이는 것은 그저 그 인생을 사는 사람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일 뿐이었다. 헤럴드는 이제 낯선 사람을 지날 때마다 모두가 똑같은 동시에 단 하나뿐이라는 진리,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딜레마라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너무 자신있게 걸어, 평생 의자에서 일어나기만 기다려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길을 걸어가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사업가를 만나기도 하고, 의사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종양학을 공부한 의사를 만나고 좌절에 빠지기도 하고... 많은 사람을 지나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길을 지나친다.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에 그는 놀라운 순례자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퀴니를 응원하기 위해, 또는 자신을, 또는 주변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그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어 했다.
그는 처음엔 얼떨떨하고 기뻐했고.. 사람이 늘어감에 따라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들이 다 떠나고는 홀가분했지만 외로웠다.
그의 길은 산보에서 시작해서 순례로 끝났다.
모린은 다시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저 멀리 파도는 평평했고 금속 색깔이었다. 저 파도는 이제 곧 여행이 끝난다는 것을 알까?
몇 번 사랑을 했고, 사랑을 잃었다. 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삶을 어루만졌고, 삶과 잠깐 놀았다. 하지만 삶은 미끌미끌한 놈이지. 마침내 우리는 문을 닫고, 삶을 두고 떠나야 한다.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고, 모든 삶에도 끝은 있다. 삶과 잠깐 놀았으나 결국 문을 닫고...삶을 두고 떠나야 한다.
얼마나 시적인 표현인지!

이 책의 제목은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이다.
이 책에서 미약한 시작을 봤고, 쏟아지는 관심을 보았고, 후엔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자아를 찾은 부부를 보았다.
순례. 작가는 왜 이 여행에 순례라는 의미를 부여 했을까?
간절한 소원이 있기 때문에?
보통의 순례는 성직자 또는 신을 믿는 이들이 신의 발자취, 그러니까 신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장소를 돌아다닌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봐도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그는 그저 한 여인이 있는 장소로 길도 모르는 채 나갔을 뿐이다.
나는 이 여행이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순례라고 이름 붙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해럴드처럼 걸어가진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암에 걸린 내 친구를 위한 순례를 가면서...
이런 순례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건강할 때 자주자주 보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